눈을 감는다고 현실의 어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외면한 결과는 또 다른 불편함이다. 어떨 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표현처럼 노동자 마디 굵은 손가락을 만져 보자. 노동현장의 차별과 고통을 직시하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8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을 보내왔다. 대상 1편과 우수상 4편을 소개한다.<편집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응당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직업을 천시하는 경향과 갑질이 사라져야 한다. 또한 3D 노동에 상응하는 보수가 정당하게 주어져야만 할 것이다. 선진국이라면 말이다. 호주나 캐나다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소위 ‘사’자가 들어가는 인텔리 직업군보다 건설노동자에서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어렵고 힘든 노동일수록 소득이 오히려 더 높다. 어떤 직업을 가졌어도 꿇리지 않고 당당하며 상대의 직업을 존중하는 사회 평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천차만별의 직업에 따라 수입 편차가 심한 사회, 경제적 계급·계층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 결과 을을 향한 갑의 갑질은 날이 갈수록 난폭해져 급기야는 갖은 명목과 모략으로 을의 목에 시퍼런 양날의 칼을 겨누고 있다.

나 또한 수십 명씩 근무하는 두 개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하루아침에 초라한 무능력 실패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이후 간도 쓸개도 다 떼어 놓고 지금껏 매일 지옥으로 출퇴근하며 죽지 못해 연명하는 퀵서비스 기사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퀵사의 거래처가 의뢰한 외부 오더를 수행하게 됐는데 거래처 직원이 은행 창구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으니 그것을 받아 전달하라는 거였다. 20분 이내에 픽업을 해야 하고 급송일 경우 표준요금에 급송료를 추가하되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해야 하며 일반배송일 경우 한 시간 대기하며 다른 오더를 픽업할 수 있고, 그로부터 한 시간 내에 배송하는 구조다. PDA(개인휴대 정보단말기)에는 일반배송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렇게 알고 스물 서넛 돼 보이는 거래처의 모 여직원을 은행에서 만났다. 여직원은 대뜸 “20분 내로 가 주세요. 이 서류”라며 창구 의자에 앉아서 무뚝뚝하게 하인 대하듯 말을 뱉었다. 아무리 퀵서비스라지만 헬리콥터가 아니고선 결코 그 시간대에 도착할 수 없는 거리여서 그렇게는 갈 수 없고 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급송일 경우 급송료가 추가된다고 했더니 “그 따위가 무슨 퀵이야. 빨리 가는 게 퀵인데. 급송료는 무슨. 쯥~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하는 것이다. 거래처 어린 여직원이 나이 먹은 사람에게 하는 언사치곤 고약했지만 그렇다고 고객과 언쟁을 하는 날엔 퀵 프로그램사에서 영구제명을 당한다는 얘기를 들은 바도 있어서 차라리 조용히 있는 게 상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0분 내로 가야 된다는 서류가 20분이 지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더를 찍고 난 순간부터 달려가 준비도 안 된 서류를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렸다. 시간이 돈과 연결되는 퀵서비스 노동자 입장에선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싫은 내색을 감추고 참았다. 출발시간부터 대기시간까지 40분이 지났을 때 여직원이 갑자기 툭 한마디를 던졌다. “아저씨, 나 그냥 취소할 거야.” 기가 막혔다. 죄송하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마치 어떤 명령에 당연히 복종해야 하는, 반문도 저항도 해서는 안 되는 관계처럼 태연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가씨를 향해 천불이 욱하고 올라오는 순간 마음 한편에 참자, 참아야 한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불편한 심사가 언어로 나가는 순간 저 버르장머리 없는 아가씨가 무턱대고 퀵사에 전화를 걸어 너무 불친절하니 당신네 회사하고는 더 이상 거래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불만전화가 가면 퀵사에서 불같이 화를 내며 전화 올 건 뻔하고 전후 사정 묻지도 않고 막강한 여의봉을 휘두르며 앞으로 당신은 우리 회사 일을 더 할 수 없노라, 하고 오더를 막아 버릴 것이다. 평생 그 회사 오더를 받을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전과(?) 기록을 다른 퀵사와 공유함으로써 '상추밭에 똥 싼 개'가 돼 버릴 때 닥쳐올 후폭풍을 염두에 두니 마음의 천불을 끄기에는 수양이 부족한 내 이성으론 여간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이것이 내 직업인 것을. 분노를 다스리려 침을 꿀꺽 삼키면서 한참을 삭이다가 “아가씨, 그렇다면 오는 도중에 취소했다면 모르지만 이미 시간과 기름을 소모해 도착한 뒤에 취소됐을 때는 규정상 최소한의 손해보상비로 취소비를 3천원 주셔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퀵사의 공통된 규정입니다” 하고 정중히 말했더니 “아니, 일도 안 했는데 무슨 돈을 달래?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절대 안 돼. 한 푼도 못 줘” 하는 것이다. 나이로 보면 막내딸보다 훨씬 어린 아가씨가 반말 찍찍 하며 경우 없이 굴어도 서비스업이기에 자세한 상황을 다시 한 번 얘기하고 만일 의심되거든 회사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라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그래도 끝까지 못 주겠다면서 억지를 부리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 더 이상 말을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약 10분쯤 있었을까. 그때서야 안 되겠다 싶었던지 지갑에서 3천원을 꺼냈다. 그러더니 “알았어. 먹고 떨어져” 하며 지폐 세 장을 공중에 확 뿌려 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부분에서 글을 멈추려 한다. 천원짜리 지폐 석 장이 훨훨 날아 내리는 몇 초 사이 수도 없이 스치던 생각과 머리의 모든 피가 역류할 것 같았던 비참한 감정을, 짧은 글솜씨로 전달하기엔 너무 많은 지면을 도배할 것 같아서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려 한다.

모욕은 둘째 치고 저 돈을 비굴하게 엎드려 주워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내 눈에서 불이 나고 찢어도 분이 안 풀릴 것 같은 상황 속에 지금까지 쭉 지켜보던, 그녀와 마주 앉은 은행 직원이 나보다 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놀란 눈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내 자신의 숨고르기가 끝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엎드려 돈을 주워 은행을 나왔다. 그날 나의 인내를 자랑함이 결코 아니다. 중첩된 이중 갑질 속에서 겪어야 했던 가난하고 힘없고 천한 직업을 가진 무능한 노동자의 초라한 순간을 이 글을 통해 조명하고자 할 뿐.

현재 퀵서비스 노동자는 오더 금액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23퍼센트의 금액을 착취당하고 있는 실정이고, 이 속에 세금이 포함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3.3퍼센트를 세금 명목으로 따로 더 떼어가는 회사들도 있다. 그 외에도 출근비, 프로그램비, 오토바이 보험료, 적재물 분실 보험료, 오토바이 유지·보수비, 연료비, 오토바이 감가상각, 식대 등 전체 1년 통계를 내본 결과 부대비용이 50퍼센트를 훨씬 초과한다. 나머지 실속 없는 처참한 수입이 우리 몫이다. 마치 배고픈 군인들의 녹봉으로 주는 쌀 무게와 부피를 부풀리기 위해 모래를 섞어 배급함으로써 성난 항거의 기폭제가 됐던 임오군란 때와 무엇이 다른가? 차 떼고 포 떼고 졸까지 떼고 나니 항상 절절매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이 퀵서비스 기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한정된 시간에 배달해야 하는 규칙 때문에 늘 급해서 빠르게 달려야 하는 일의 특성상 경찰모를 눌러쓴 매의 눈들이 도처에서 스티커를 흔들며 가뜩이나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간다.

또한 사시장철 우리는 풍한서습 속에서 산다. 태풍과 장대비를 맨몸으로 부딪치며 때로는 눈보라를 못 피해 오토바이를 보듬고 뒹굴고 거꾸러져 스케이트를 탈 때도 있고, 아래는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와 위로는 내리쬐는 불덩어리 같은 뙤약볕, 그리고 주변은 난로가 된 자동차들 틈에 뜨거운 매연과 에어컨 열풍도 모자라 푹푹 찌는 습도 속에 그야말로 산지옥 그 자체다. 무엇보다도 이륜 오토바이는 전후좌우 아무런 방어책이 없어 아무리 조심해도 상대 차량이 실수하는 상황에선 대형 사고를 피할 방법이 전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과 중 병원이나 심지어 황천으로 직행하는 퀵서비스 기사들이 하루에도 전국적으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생명을 걸고 일해도 생명수당은 일전도 없는 터에 퀵사들은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턱없는 저가 오더를 올려놓고 프로그램사는 뭉텅이로 수수료를 걷어가는데 퀵사는 그 걸로도 양이 안 차서 표준마진을 또 칼질(고객이나 화주로부터 받은 운임의 일정 부분을 떼고 기사에게 주는 것)해서 자신들의 몫으로 먼저 쓸어 담아 놓고 자투리가 된 금액을 퀵 프로그램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등치고 간 꺼내 먹는 그 파렴치를 모두 알고 불평하지만 철옹성 같은 퀵사에 감히 대항할 자는 없다. 더구나 프로그램사가 한패가 돼 자칫 눈 밖에 났을 때는 가차 없이 무소불위의 철퇴가 날아 들어와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 누가 감히 입이라도 뻥긋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2018년 11월부터 12월까지 우리 개개인이 각자 사장이라며 노동자를 부인 해 오던 저들이 모든 퀵서비스 기사들에게 지령을 내려 이 기간 내에 사인하지 않으면 내년 1월1일부터 프로그램을 더 이상 볼 수 없도록 차단하겠다는 외통수 으름장을 놓았다. 차후 그들이 정한 일방적 규약을 위반할 때에는 영구제명을 포함한 모든 처벌을 100퍼센트 감수하겠다는 노예계약서를 강제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내년부턴 우리의 생사여탈권이 사실상 그들 손아귀로 완전히 들어간다.

전국적으로 퀵서비스 기사들의 수가 17만명에 이르는데도 개별적으로 출근하고, 가는 방향도 저마다 달라서 서로 결속할 수 없는 백사장 모래알 같은 존재들일 뿐. 밟히면 패이고 바람 불면 날아가고 파도가 덮치면 밀리고 쓸려 가도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한없이 무기력한 자들이기에 기껏 퇴근 후 소주잔에나 홀로 자조와 푸념을 터는 천대받고 갈취당하는 지극히 서러운 저 계급층 천한 직업이 아닐 수 없다.


나를 위한 건배


참 화가 난다 괘씸한 수입


지출할 곳은 코앞에 줄을 섰고


수입은 십리도 더 멀리 따라오네.

땅 꺼질 한숨은 턱 밑에 붙어살고

천근 삶의 무게 어느 때나 벗을란가

만사를 잊고자 소주잔을 든다.

뒤집지는 못해도 뱅뱅 도는 세상

이것만이 나의 위안이려나.

하지만 어떡하랴 피할 길 없으니

그래도 꿋꿋해야 할 나를 위하여


그러나 해결방법이 요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에게도 최근 들어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하고 무식했던 탓에 조직이 갖춰지고 규모가 있어야 하며 한 직장이어야만 노조가 세워지고 노총에 가입할 여건이 조성되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노총이 집회를 주도할 때는 한편 부럽고, 한편 집회를 할 수 있는 우리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은근한 시기심에 철딱서니 없는 배앓이를 했다. 그런데 우리를 대변해 줄 노총이 관심을 보여 주고 뿔뿔이 흩어진 소수의 힘없는 노동자들도 비정규직 연맹이 포옹해 준다 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가. 이는 수탈만을 강요당했던 힘없는 백성들이 탐관오리에 맞서 죽기를 불사하며 항쟁의 불을 질러 조선 전역에 들불처럼 번져 갔던 동학혁명의 선봉에 섰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자랑스러운 후예들이 질곡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같이 나약한 무리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 준다 하니 실로 꿈을 꾸듯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비록 하찮은 백사장 모래알 같은 우리들일지라도 노총과 비정규직 연맹이 시멘트와 물이 돼 우리와 한 몸이 돼 준다면 어떠한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강한 콘크리트 철벽 아성을 만드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옛 속담처럼 쥐구멍에도 이제야 볕이 드는가? 그동안 거대 공룡들에게 굽히지 않고 노동 권익을 위해 싸워 온 노총과 연맹의 선구자들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드린다. 갑질의 횡포에서 유린당하는 노동자가 대한민국에 단 한 사람도 없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늦게나마 미천한 힘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태리다. 건투와 승리를 함께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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