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헛되이 마라/ 외치던 그 자리에 젊은 피가 흐른다/ 내 곁에 있어야 할 그 사람 어디에/ 다시는 없어야 할 쓰라린 비극.’

전태일 추모가를 읊조리며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씨를 떠올린다. 유품으로 남은 컵라면 세 개와 과자 한 봉지. 탄가루로 거뭇해진 작업수첩. 재작년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김군과 흡사한 사고라서 너무 맘 아프다. 먹지도 못하고 남긴 컵라면이 열악한 청년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지를 닮은 것 같아 비감해진다. 김용균씨도 김군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터에서 홀로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2인1조로 일했다면 예방하거나 중대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 청년 비정규 노동자가 희생되는 비극이 계속 재발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넓혀져 왔는데 도대체 일터에서는 왜 비정규 노동자가 매번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비정규 노동자는 죽어야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대책 마련이 논의되는 것인지, 그러다 유야무야된 게 또 몇 번인지 되묻게 된다. 이번엔 반드시 비정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모는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용균씨 어머님이 호소했던 것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당장 죽음의 일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어떤 정부든 거침없이 밀어붙여 온 민영화와 외주화가 말단 비정규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왔다. 모범사용자로 역할해야 할 정부가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남용하면서 청운의 꿈을 품고 일해야 할 청년노동자를 죽였다. 원래 발전소 정규직이 2인1조로 일하던 시스템이 외주화되면서 사라졌고,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2인1조로 운영하지 않았다. 발전소가 직접 운영해야 할 업무를 하청업체로 조각조각 떠넘긴 위험의 외주화가 한 청년을 죽음으로 이끈 주범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규직화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단계별 정규직 전환과 채용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발전 5사에서 모두 묵살됐다. 제대로 정규직화 심의가 이뤄졌다면 김용균씨가 수행한 상시·지속업무인 연료환경설비운전 직무는 정규직이 돼야 했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기에 제대로 된 처우는 고사하고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목숨을 건 야간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신을 발견하고도 즉각 119에 신고하지 않고 상부에 보고하느라 1시간 지체된 사실이 밝혀져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김용균씨의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하청·용역·파견·하도급은 실상 불법일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용자책임 회피를 위한 무법지대가 돼 버렸고, 특히 안전과 관련해선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게다가 대다수 비정규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노동조합 바깥에 내몰려 있어 산업재해 희생양이 되기 일쑤다. 2000년 이후 하루 평균 6명의 노동자가 산재 사망사고를 당했는데 대부분이 하청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직접고용돼야 할 노동자들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전락해 위험한 일터에서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면서 목숨을 잃고 있는 지옥 같은 현실이다.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 매번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 노동자가 희생되는 일터. 촛불정부를 자임해 온 현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며 다시 노동자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외치고 있는 세밑 풍경이 2018년 노동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이번만큼은 반짝관심으로 그쳐선 안 된다.

두말할 것 없이 정부와 국회는 김용균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우선 위험업무는 외주화를 금지하고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과 전환을 의무화해야 한다. 산재사망 발생시 사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 2008년 살인기업법을 도입한 영국은 산재사망률이 우리나라의 18분의 1에 불과하다. 안전 무방비 사각지대인 외주·하청 구조 아래 힘없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중대산재 사망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이 세상에 없다. 정부와 국회, 노사 모두 최우선 선결과제로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윤과 효율을 생명과 안전보다 앞장세우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창졸간에 자식을 잃은 김용균씨 부모님께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만나길 애타게 요구하고 있다. 이번 주 금요일 청와대로 가는 촛불행진도 예정돼 있다. 늦었지만 생전의 김용균씨 바람을 부모님이 이룰 수 있도록 대통령이 조건 없이 만나 대화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및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약속해야 한다. 불법파견 근절과 원청 사용자 공동책임 등 공약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다. 다시는 이런 쓰라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통령과 정부, 집권여당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죽음의 외주화, 이제는 근절해야 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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