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죽음의 외주화는 어떻게 은폐되나

지난 10일 산업은행 화장실 한편에서는 프로그램 외주개발사에서 일하던 40대 노동자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업무시간 중 쓰러졌지만 책임지는 사용자는 아무도 없었다. 산업은행의 차세대시스템 개발프로젝트를 수행하던 그는 산업은행 프로젝트를 담당해 온 SK C&C의 프리랜서 노동자였다. 실질적으로 업무지시를 받고 엄청난 성과 압박을 받지만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면, 기한 내에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 개발 과정에서 노동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최근 IT 업계에도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문제가 제기되면서였을까. 올 하반기 산업은행은 하청발주방식을 하청업체 정규직 고용 조건으로 변경했다. 그러면 그는 그나마 SK C&C 정규직이 됐을까? 아니다. SK C&C의 1차 하청업체인 대원 C&C의 정규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산업은행에서 똑같은 일을 했다. 재하청업체는 실제 프로젝트업무를 관장하는 사업주체가 아니라 개발자들의 인건비 등 인력관리를 하는 파견업체와 닮아 있다. 심지어 대원 C&C는 최저임금에 맞춰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나머지 급여는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해서 별도 매출로 처리하는 구조를 취했다. 반프리. 그들은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과연 이들은 노동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일까, 아닐까. 약속된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일을 해도 이 일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한 일인지 독립적인 사업소득을 위한 사업자로서 한 일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인 산업은행은 하청업체 직접고용을 통해 정규직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고 경영평가를 늘어놓겠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들이 반쪽짜리 노동자도 아니고, 반쪽짜리 ‘프리랜서’로 불리는 이유는 산업은행과 SK C&C가 업무상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하더라도 중간에 또다시 하청업체를 끼우고, 반쪽짜리 개인사업주의 업무재량성을 들어 불법파견(위장도급)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용역업체가 자회사로 탈바꿈하는 합법적 과정

많은 사용자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던 비정규직의 외로운 죽음을 수습한 것은 다름 아닌 비정규직들이었다. 이미 몸이 굳은 그를 수습하고 경찰에 연락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은 국가주요시설이라는 산업은행 시설을 청소하고 경비근무를 하는 산업은행의 또 다른 비정규 노동자들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이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으로 행복해졌을까.

산업은행은 이들에 대한 직접고용을 거부했다. 자회사 정규직도 정규직 전환이라는 이유였다. 그동안 산업은행은 시설관리 용역사업 대부분을 산업은행 행우회가 설립한 두레비즈에 특혜를 줬다. 그런데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자 산업은행은 두레비즈를 자회사로 재편하기 위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표면적으로는 전환심의협의회의 수적 우위를 이용해 정규직 전환대상 노동자대표들에게 자회사안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이미 산업은행은 자회사 전환방향으로 결정했으니 전환대상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직접고용은 검토해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이달 12일 산업은행은 자회사안에 대한 표결처리를 강행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자회사 전환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환심의협의회에 전달하고자 했으나 산업은행은 경찰까지 동원해 이들을 겹겹이 막아섰다. 산업은행 시설을 청소하고 관리해 왔던 바로 그 노동자들로부터 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전환당사자인 노동자대표들이 끝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기권하면서 정규직 전환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노동자대표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회사 전환을 강행결정하고 전환협의회는 해산됐다. 정부는 자회사는 용역과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산업은행 시설관리 자회사는 용역업체인 두레비즈 임원에서 산업은행 자회사 임원으로, 산업은행 정규직들의 퇴직 후 보다 안정적인 취업경로가 됐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규직 전환인가.

직접고용을 통해 기관 내 비정규직 차별을 단계적으로 해소해 가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자회사 전환을 통한 약간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나 만족하라고, 그것이 정규직 전환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들이 꿈꾸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을 숨기는 것이다. 자회사가 다단계 하청구조를 은폐하는 새로운 이름이 아니냐, 라는 노동자들의 질문에 정부와 산업은행은 책임 있는 결과로 답변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