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민중은 체험을 통해 겨울보다 여름이 살기 낫다고 생각한다. 여름철에는 겨울철에 비해 의식주 셋 가운데 입는 것과 잠자는 데 필요한 것을 덜 소지하고 있어도 되고, 먹을거리를 구하기도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면 없는 사람들은 삶을 꾸려 가기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좋지 않은 경제상황을 곧잘 경제의 겨울로 비유한다. 그 경제의 겨울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지난 10일 <아시아투데이> 김이석 논설심의실장이 “세계 경제 ‘겨울이 오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13일 <매일경제>에 “경제, 혹한(酷寒)이 오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성 교수는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금리 움직임이다. 일반적으로 경제 전망이 비관적일 때 장기금리가 낮아져서 단기금리와 격차가 좁혀지는데, 최근 미국에서 장단기금리 격차가 급격히 줄고 있으며, 그와 연동돼 우리나라 장단기금리 격차도 줄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근거로 그는 최근 미국 월가에서 테크놀로지 기업 주식을 비롯해 주가가 전반적으로 급락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현재 미국 기업의 실적과 거시지표가 나쁘지 않은데도 이렇게 주가가 하락한 것은 미국 금융시장에서 경제상황에 대한 전망이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것이다. 그동안 다들 미국경제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고 말해 왔는데, 그게 거짓이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김이석 논설심의실장은 오스트리아학파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그에 따르면 이 학파는 일찍부터 세계경제에 겨울이 올 것을 내다봤다는 것이다. (미국) 연준이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위적으로 이자율에 낮췄으며, 그런 인위적인 저이자율에 따라 ‘잘못된’ 투자들이 실행되고 또 정리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겉보기에는 호황이지만 결국 터지게 될 큰 거품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반응하는 존재다. 미 연준이 앞으로 화폐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따라 언제 미국 경제에 ‘겨울이 닥칠지’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양적완화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되돌려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한 ‘경제에 겨울이 오고 있다’는 패턴예측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 겨울의 원인은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 등 경제당국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진단은 올바른가? 그리고 그것에 입각해 내놓은 처방은 올바른가? 한 사람은 정부에 경기부양이 아닌 긴축을 처방하고, 다른 한 사람은 기업에 “비핵심 분야 투자는 확대하지 말고 구조조정을 강화하며, 품질은 유지하지만 비용 최소화에 전력을 다하는 기업의 생존 모드를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상투적 처방을 내놓고 있다.

이 지점에서 최근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1997~98년 진행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전말에 관한 것으로서 누적관객이 350만명에 달하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IMF 사태는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 민중의 삶에 전쟁이나 혁명에 버금가는 큰 생채기를 내거나 훗날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 큰 사건이고 사태다. 이런 역사적 대사건을 다룬 영화는 예술적 완성도를 떠나서 의미가 있다. 헬조선에서는 국민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성체제에 불편한 역사적 대사건은 영화로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은 영화에서 드러낸 진실은 일면적·표면적 수준을 넘지 못했다고 평했다. 재벌과 노동자는 없고 김영삼 정권의 무능과 관료의 나쁜 행태를 드러내는 데 그쳤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매일노동뉴스> 12월13일자에 ‘국가부도의 날, 그날의 민주노총’이라는 글을 썼다. 그 당시 중요 행위자 중 하나인 민주노총의 행위가 영화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고, 당시 민주노총의 행위에 관해 정곡을 찌르는 분석을 해 줬다. 민주노총은 어떤 배경에서 건설 초부터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을 추구했는지, 그리고 IMF 사태의 와중에 집권한 김대중 자유주의 정권에게 어떻게 배신당했는지, 또 그런 배신에도 어떻게 노사정위원회에 계속 매달렸는지에 대해 잘 정리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노동운동은 그런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선택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한가?

어쩌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보다 더한, IMF 사태에 준하는 경제겨울이 오고 있을 수 있다. 경제겨울이 왜 오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그 사태에 대한 처방을 옳게 만들 수 있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경제겨울은 구조적인 위기인 동시에 역사적인 위기다. 역사적 위기라 함은 자본주의가 생명력을 다해 가는 위기라는 말이다. 봉건제가 왜 소멸했는가. 과도한 착취로 농노들의 숫자가 줄어서 망하게 됐다. 지금 자본주의가 꼭 그런 꼴을 보이고 있다. 출산감소와 그에 따른 인구감소는 선진자본주의에서 공통적이고 지속적이다.

구조적 위기는 자본의 과잉생산능력과 노동자·민중의 과소소비능력 사이의 불균형이 극도로 심화돼 발생하는 위기를 말한다. 그러므로 노동자·민중의 부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만이 이 위기를 타개하고 생산 및 경제 활동을 활성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를 위해 철저한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기생적인 재벌과 부동산 소유자들을 안락사시켜야 하고, 기성의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해체해야만 한다. 이런 변혁은 노동자·민중이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정치혁명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따라서 비록 힘들고 고난이 따를지라도 이런 길, 천민자본주의 변혁을 통한 자본주의 지양의 길로 나아가지 않는 모든 처방은 엄습해 오는 경제 ‘혹한’을 경제 ‘봄’으로 바꾸는 희망의 길이 되지 못할 것임을 분명히 할 때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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