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바야흐로 정부 각 부처의 2019년 업무보고 시즌이다. “든든한 고용안전망, 탄력적 근로시간제 관련 법 개정, 청년이 쉽게 일자리 찾을 수 있도록 지원.”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요지다. 그런데 이 내용은 과연 몇 년도 업무보고일까?

2019년 업무보고라고 생각한 분들은 절반만 맞췄다. 위의 내용은 박근혜 정권의 서슬이 가장 시퍼렇던 2016년 초 노동부 업무보고 내용이기도 하다. 2016년 초가 어떤 시절이었는가? 17년 만의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2015년 9·15 합의를 기반으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앞세우며 직무·성과형 임금체계 확산,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비롯한 근로시간의 유연한 활용 촉진, 고용보험 적용 확대 등을 추진하던 때다.

2019년 노동부 업무보고 역시 이와 대동소이하다. 중소사업주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최저임금 결정기준·결정방식을 바꾸고, 주 40시간 이상 노동에 대한 가산수당 부담을 없애 주기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과거 정권이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사안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노동법적 보호는 불가하지만 산재보험·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하겠다는 것 역시 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사안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노동부 업무보고와 문재인 정권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 들어가 있는 것도 유사하지만 동시에 빠져 있는 것도 똑같다. 양질의 일자리, 또는 요즘 유행어로는 갑질 없는 일자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인 ‘목소리를 낼 권리’, 노조할 권리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또한 닮은꼴이다. 노조 설립신고제도를 통해 정부가 사실상 허가제로 노동조합의 존립을 좌우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십분 활용하는 사용자의 노조파괴 전략을 방조하며,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사용자에게는 관대한 대신 노조의 단체행동에는 폭압적으로 대응하는 양상 역시 이전 정권과 달라진 바가 없다.

특히 올해는 재판거래를 비롯한 사법농단 사태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을 통해 그동안 의혹으로만 존재했던 국가에 의한 노동기본권 파괴 공작의 실체 일부가 사실로 드러났다. 최고 권력층이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를 기획·실현시키고, 정리해고·구조조정에 맞선 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몰아 가혹한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하고, 김앤장·창조컨설팅 등 전문가들과 결탁해 노조파괴를 주도하고, 불법파견·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는 사용자들에게 면죄부를 발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 상태고,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천문학적 손해배상 청구도 여전하며, 8년간 계속된 집요한 노조파괴 공작에 모든 면에서 피폐해진 유성기업 노동자들 역시 그대로다. 노조 무력화를 주도하면서도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대화조차 거부하는 스타플렉스·CJ대한통운 등 실질적 사용자들의 무책임한 행태 역시 여전하며, 이들에 맞선 노동자들의 절규를 외면하는 정부 태도 역시 그대로다.

2019년 노동부 업무보고에 재판거래와 고용노동행정개혁위 활동으로 드러난 노동기본권 파괴 사안에 관한 단 하나의 언급도 없는 반면,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등 재계의 요구를 반영한 단체교섭·단체행동권 관련 법·제도 개정 과제는 포함돼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문재인 정권의 ‘노동존중’에는 노동기본권 존중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뜻 아닐까? 과거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2018년을 보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사회에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여전히 헌법전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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