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집회·시위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프고 억울한 자들의 아우성이다. 억압과 차별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아프고 억울하다. 사람들은 아프고 억울한 사연을 이야기하기 위해 광장에 모이고 국가기관과 거대기업 앞으로 간다. 집회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는 그런 제각각의 목소리 형태를 어그러뜨리지 않고 귀기울여 주는 사회다. 병든 사회는 아프고 억울한 자들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들이 아프고 억울하다고 아우성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다.

그런데 권력과 자본을 동원해 아프고 억울한 자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이 있다. 집회장소를 선점하고 일당을 쥐어 주며 어깨띠를 메고 집회를 하라고 한다. 돈과 태극기를 쥐어 주고 억울한 양 태극기를 흔들라고 한다. 진짜 아프고 억울한 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거다.

얼마 전 법원은 현대자동차가 10여 년 넘게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직원들과 용역을 동원해 해 온 알박기 집회를 경비업무로 봤다. 타인의 집회개최를 방어하기 위해 직원과 용역을 동원한 집회이므로 헌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보호해야 하는 평화적 집회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사기업의 경비업무면 마땅히 자신들의 시설관리권이 미치는 장소에서 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집회신고를 하고 자신들의 직원들과 경비업체에 의해 동원된 용역들을 배치해 놓고 타인의 집회를 방해하는 것은 집시법 위반 범죄다. 경비업체가 경비원을 경비업무 이외의 업무에 배치하는 것은 경비업법 위반 범죄다. 현대차는 오늘도 이 모든 것을 지휘하면서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수수방관, 아니 오히려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를 보호하는 데 여념이 없다. 집회신고를 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는 궤변만 늘어놓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집회신고를 하고 집회를 한 수많은 시민들을 집시법 위반과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한 이유는 무엇인가. 타인의 법익을 침해했다는 이유 아닌가. 재벌대기업이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동원해 장소를 선점하고 직원과 용역에게 어깨띠 메고 서 있게 하면서 집회와 기자회견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집회신고 낸 장소니까 다른 데 가서 하라고 위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은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국가기관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공공장소의 형태와 활용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서울시청 건너편 대한문 앞 화단을 보라. 길 한중간에 맥락 없이 놓여져 있는 이 화단은 2013년 4월 서울 중구청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된 천막을 철거한 후 설치한 화단이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대한문 앞 화단은 유용하지도 않고 심미의 대상물도 아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대한문 앞 화단 뒤로 쌍용차 노동자들을 비난하던 보수단체 천막이 설치돼 있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다. 그럼에도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설치된 화단이 제거돼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인도에 설치된 철골 울타리와 덩굴 화단은 어떠한가. 지난해 1월 검찰이 박근혜·최순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이재용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은 기각했다. 법률가들은 이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앞 인도에 천막을 치고 16일간 노숙농성을 했다. 노숙농성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골 울타리가 인도 위에 세워졌다. 더 이상 자신들 앞에 와서 아우성치지 말라는 의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차별적으로 분배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오늘도 국가기관은 교묘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자유를 차별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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