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민주노총이 동네북 신세다. 잘못이 있으면 동네북이 돼야 한다. 그래야 혁신이 있고 발전이 있다. 인생을 오롯이 담은 민주노총의 동네북 신세가 쓰리지만, 현상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전략과 전술을 주·객관 정세에 적합하게 혁신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혁명 방식이든 개량 방식이든 중심부노동과 주변부노동으로 계급이 해체된 노동 분단을 해결하지 못하면, 즉 상위 10% 노동과 하위 10% 노동의 임금격차를 3배 이내로 줄이지 못하는 한 민주노총은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한마디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자격 안 되는 이들이 두드리는 북소리는 듣기 참 거북하다. 비정규직 늘리는 데 일조하고 재벌을 옹호하면서 상위 5%에 진입한 주제에 민주노총을 두드리는 일부 언론과 교수 등이 그렇다. 오물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썩은 북채로는 북을 때리지 말라. 특히 집권 여당과 정부 고위직의 북소리는 시끄럽기만 하니까 그만하라. 노동운동의 혁신 흐름을 만들려고 안에서 욕먹어 가며, 때로는 징계까지 받아 가며 내부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정부와 집권당 일부 인사들의 뜬금없는 발언 탓에 움찔하고 있다.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내부는 단합의 논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법이다.

노동운동에는 혁신의 몸부림이 있다. 금속노조와 양대 노총 공공부문,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 등에서 노조와 조합원들이 제 몫을 나눠 사회연대기금을 만들고 있고, 보건의료노조는 정규직의 임금인상 몫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처우를 개선했고, 금속노조는 하청의 임금인상률은 높이고 원청 인상률은 낮추는 하후상박 연대임금전략을 채택했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사회를 향해 제몫 나누는 고민이라도 한 적 있는가. 소득 상위 10%에 들어 먹고살 만한 공무원 사회연대기금을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는 생각이라도 한 적 있는가. 고민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데, 얻다 대고 함부로 북채를 휘두르는가.

민주노총에 이런 노조가 있다. 명칭부터 참 특이하다. 이름하여 희망연대노조다. 앞에는 ‘더불어 사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더불어 살기 위해 희망으로 연대하는 노조, 또는 더불어 사는 희망을 만들려고 연대하는 노조로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2009년 김진억을 비롯한 조합원 9명으로 창립했다. 현재는 5천200명이다. 딜라이브 원·하청, 티브로드 원·하청, KTcs, 120다산콜재단, 경기도콜센터, LG유플러스 협력사, LG유플러스 수탁사, SK브로드밴드 자회사,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더불어사는지부가 있다. 감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 비정규직 중심 노조다. 그런데 노조는 사회연대를 기치로 삼고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여타 노조들과 달리 생활문화연대국이 있다. 그러면서도 사업을 더욱 알차게 수행하려고 사단법인 희망씨를 만들어 운영한다.

희망연대노조·희망씨는 일상 나눔으로 용산 동자동사랑방과 안양 등에서 과일나눔을 한다. 조합원이 직접 참여해서 지역과 함께하는 집수리 활동도 한다. 올해도 10곳 이상 집수리를 했다. 희망울타리 사업으로 아동과 장애청소년 등에게 교복과 생리대를 지원하고, 문화 및 심리정서도 지원한다. 위기가정에는 의료비와 양육비에 전기밥통 등의 긴급지원도 한다. 지역풀뿌리단체와 끈끈하게 연대하며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에도 열심이다. 이것만도 벅찬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네팔의 초등학교 두 곳에 운영비를 지원하고, 도서실·태양열·급식비 지원에 장학금도 지원한다. 노조는 조합원공동체를 강화하려고 가족캠프·수어동아리·아버지학교 등의 활동에도 열심이다. 사업장 울타리 안에서 조합원 임금과 고용만 챙기고 있는 한국의 노조 현실에서 보면, 정말 신통한 노조다.

맨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노조는 조합원의 임금인상을 줄여서라도 사회공헌기금을 만들려 애를 쓴다. 박근혜 정권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노사를 압박했다. 조합원들이 돼지저금통을 모으기도 한다. 조합원과 뜻 있는 노동자·시민이 매달 1만~2만원 나누는 후원회비도 있다. 사무금융노조 KB손해보험지부에서 1천만원의 기금을 나누는 등 뜻있는 노조들의 연대도 있다. 그래도 사업비가 모자라면 활동가들이 스스로의 임금을 체불하기도 한다. 지원과 나눔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의 딱한 처지가 눈에 밟혀서다. 참으로 눈물겹다. 희망연대노조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렇다. 조합원들이 일상 삶 속에서 지역과 나누며 연대할 수 있어야 노동계급 의식과 조직력·투쟁력이 강해진다고 믿어서다. 그래야 노동운동이 한국 사회를 건강하게 밀어 갈 수 있다고 믿어서다. 그래서일까. 희망연대노조는 웬만한 노조들보다 투쟁을 잘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투쟁 중이다. 민주노총 혁신의 모범사례다.

자, 어떤가. 다른 노조도 희망연대노조·희망씨처럼 바꿔 보는 것이. 힘에 부쳐 그것이 어렵다면 희망씨에 결합해서 같이하는 것이. 그것도 어렵다면 각자의 몫을 조금씩만 떼어 희망씨에 연대하고 나누는 것이.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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