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내 친구 놈도 연세대 관리하는 놈인데, 걔도 그러더라고."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그게) 누군지."
"태가라는 회사 있죠. 거기."

광운대학교 청소용역업체 사장과 노조 관계자 사이에 오간 대화의 일부다. "걔도 그러라고 했다"는 말은 연세대를 관리했던 태가라는 회사가 개별교섭에 동의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는 뜻이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광운대분회와 용역업체가 올해 3월 맺은 기본합의서에는 "노조와 자율(개별)교섭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최근 2노조 조합원수가 더 많아져 분회가 소수노조로 바뀌었다. 지부는 기본합의서대로 개별교섭을 하자고 회사에 요구했는데 청소용역업체 사장이 '태가'를 언급하며 거부한 것이다. 문제의 '태가'는 태가비엠의 약칭이다. 지부가 6일 광운대 청소용역업체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태가비엠식 노조 파괴 확산하나=지부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태가비엠의 방법이 효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다른 업체들이 조언까지 받겠다고 나선 상황”이라며 “노동부가 부당노동행위를 철저히 수사하고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용역업체 태가비엠은 연세대세브란스병원과 고려대안암병원의 청소용역을 맡고 있다. 지부에 따르면 이들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를 활용한 노조파괴가 이뤄지고 있다. 친기업 복수노조를 지원하고 껄끄러운 노조와는 교섭을 거부해 교섭권을 박탈하는 방식이다. 전국을 돌며 회사와 짜고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다 대표자와 소속 노무사가 구속된 창조컨설팅의 기법과 유사하다. 복수노조를 만들고 지원해 키우고 기존 노조 조합원이 줄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따라 교섭에서 배제해 마음에 들지 않는 노조의 씨를 말리는 방식이다.

노동자들은 창조컨설팅식 부당노동행위가 태가비엠으로 이어져 다른 청소용역업체에 확산하고 있다고 호소하지만 노동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 지부는 “부당노동행위 증거를 어렵게 잡아 노동부에 고소해도 감감무소식”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6년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는 태가비엠의 부당노동행위 증거를 모아 노동부에 고소했지만 지난해 6월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결국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발표한 활동결과보고서에는 노조 무력화 및 부당개입 관련 실태 사례로 세브란스(태가비엠)가 기록됐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문제점으로 “원청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 증거가 존재함에도 추가 증거자료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기법을 동원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리했다”며 “하청업체 반장의 부당노동행위가 수사과정에서 확인됐음에도 고소인이 피고소인으로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부는 하청업체 반장을 피고소인으로 특정해 지난해 9월 2차 고소를 했다.

◇"노동부에 증거 가져가도 1년 넘게 조사 중"=조종수 지부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장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만 힘든 업무에 배치해 고생하다 일을 그만둔 조합원도 있다”며 “너무 억울해서 노동부에 고소했지만 1년 넘게 아직도 조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담당 근로감독관은 “조사 중인 개별 사건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려대안암병원분회도 복수노조 결성에 사측이 개입했고 가입을 유도한 증거를 모아 지난달 노동부에 태가비엠을 고소했다. 안수빈 고려대안암병원분회장은 “복수노조가 설립된 뒤 청소구역 재배치 때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불이익을 당할까 봐 벌벌 떨었다”며 “결국 많은 조합원이 복수노조로 옮겨 가 분회는 교섭권을 박탈당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일 이화여대 미화용역 입찰 현장설명회에서 청소노동자들이 피케팅을 하며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회사만 입찰에 응하라” “악질업체는 절대 들어오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가비엠이 입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지부는 “태가비엠의 부당노동행위에 노동부가 눈을 감아 주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자구책으로 업체 계약 저지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손봐야”=노조는 교섭권 보장을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김형규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창구단일화 제도 때문에 소수노조가 되면 교섭권도 쟁의권도 박탈당한다”며 “사용자가 노조를 와해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복수노조를 지원해 과반수노조로 만들면 손쉽게 교섭권과 쟁의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행 창구단일화 제도 때문에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동 3권을 완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당장 제도 폐지가 어렵다면 소수노조도 교섭단에 포함하도록 하는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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