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3개월 앞둔 지난해 2월 <주간 문재인 6호>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가리켜 "이상한 사장님"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영상에서 "특수고용직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1년9개월이 지난 2018년 11월 현재 문재인 정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년 넘게 "실태조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장 노조간부와 노동자들이 '이상한 사장님'으로 사는 고충을 담은 글을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건설기계·화물운송·플랫폼 노동자와 방송작가·경마기수·제화노동자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한다.<편집자>

정기만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


올해 4월 탠디에 근무하는 제화노동자들이 점거농성투쟁을 진행하면서 제화노동자 삶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한 켤레에 30만원 하는 구두를 만드는 장인들이, 당연히 돈을 많이 받겠다고 여겼던 수많은 제화공들이 5천500원·6천원 하는 공임비(구두를 만들고 제화노동자가 받는 돈)를 받는 데 놀랐을 것이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물가가 올랐지만 성수동 조그마한 공장 안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단 한 번도 공임비가 오르지 않았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데에는 구두업계의 독특한 소사장제(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에 갇힌 제화공들의 처참한 구조가 있다.

한 켤레에 30만원 하는 구두는 신세계백화점·롯데백화점 등이 35~38%의 수수료를 떼어 간다. 이들 백화점이 운영하는 온라인매장에서도 똑같은 수수료가 적용된다. 최근 매출이 많은 홈쇼핑 등은 41%의 수수료를 떼어 간다. 30만원 구두에 유통수수료가 12만원 정도 나가는 것이다.

구두업계는 본사가 자체 공장을 가진 경우가 거의 없고 브랜드 이름만 가지고 장사를 한다. 이른바 탠디·소다·닥스·미소페·세라·고세 등이 대부분 이런 시스템이다. 구두 제작은 하청공장에서 주로 한다. 납품하는 가격은 평균 5만~7만원 수준이다. 그동안 하청공장들은 본사에서 납품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제 살 깎기를 하면서 낮은 납품단가로 경쟁했다. 이렇게 서로 경쟁하면서 생긴 공장이 성수동에만 300개가 넘는다. 납품단가를 낮춰서 물량을 가져오면 피해는 고스란히 성수동 제화노동자에게 돌아갔다.

하청업체 사장들은 백화점 수수료가 올랐다는 이유로, 원청이 납품단가를 안 올려 준다는 이유로 제화공들에게 공임비를 못 올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제화공들은 지난 20년간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공임비를 올려 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주면 주는 대로, 혹시라도 이 일마저 못할까 봐 두려워 노예처럼 살았다. 처음 제화노동자가 집회를 할 때 가장 먼저 나왔던 "족쟁이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는 이런 제화노동자들의 마음을 담았다.

소사장제는 산업 자체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그래도 매년 한두 번씩 100~200원이라도 공임비를 올려 줬고, 퇴직금도 줬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고용구조가 바뀌면서 퇴직금을 주지 않는 사업장이 늘어났다. 최근 제화노동자들이 법원에 낸 퇴직금 소송에서 지속적으로 승소하고 있는데, 법원은 제화공들이 실질적으로 지휘·감독을 받아서 일하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원청·하청업체·제화공까지 모두가 사장인 이 구조는 제화공의 삶을 피폐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제화산업 자체를 왜곡했다. 구두 장인들의 평균 나이는 55~57세다. 10년 후면 전국에 있는 제화노동자 5천명 중 절반 가까이가 일을 더 이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신규인력은 제화산업에 들어오지 않고, 누구 하나 신규 제화인력을 육성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원청은 제화산업에 투자하기보다 땅을 사고, 하청업체는 인건비를 낮춰서 공장을 운영할 뿐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제화산업을 손 놓고 바라볼 뿐이다.

제화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키워서 사측을 상대로 공임비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제화산업 생태계를 안정화하는 일도 해야 했다. 백화점·원청·하청공장이 모두 자기 이익만 바라보면서 제화공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구두산업을 망가뜨렸다. 노동조합은 공임비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구두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교섭에서 사측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백화점 수수료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제화공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소사장에서 4대 보험을 받는 노동자가 되는 것은 결국 왜곡된 제화산업 자체를 바꾸는 일이 됐다. 제화공들은 한국의 제화산업이 자신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년제화공이 자신의 일을 잇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이 길에 노동조합이 선두에 서서 나서고 있으니 많은 분들이 함께 응원하고 함께해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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