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

작업치료사 우시은(33)씨는 요즘 병원이 아닌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으로 출근한다. "저는 환자를 치료하는 치료사입니다.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한다. 올해 8월 금천수요양병원에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병원측은 우씨 부모님에게 계약해지 사실을 내용증명으로 보냈다.

"전 직장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오랫동안 일할 곳을 찾아서 2016년 8월 금천수요양병원으로 이직했어요. 올해 9년차입니다. 작업치료사는 연차가 높으면 구인하는 곳이 없어 이직이 어렵기 때문에 신중하게 입사지원서를 썼죠. 그런데 병원에서 계약만료일이 8월15일이라며 이틀 전에 계약해지를 통보하더라고요. 근무시간에 계약해지 사실을 통보받았는데, (병원측이) 집으로 내용증명까지 보냈습니다."

병원 모집공고에는 '정규직'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그는 "해고된 날까지 비정규직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병원은 지난달 30일자로 또 한 명의 작업치료사를 계약해지했다. 이들은 "병원이 치료사를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20~30대 젊은 치료사를 고용해 마른 수건 쥐어짜듯 부려먹다가 이에 항의하면 해고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일 <매일노동뉴스>가 요양병원 갑질에 우는 작업치료사 실태를 들여다봤다.

작업치료사 2명 중 1명 '요양병원' 근무

조금은 생소한 직종인 작업치료사는 의료기사로 분류된다. 주로 중추신경계에 손상이 있거나 발달 과정에서 장애가 생긴 환자가 스스로 일상생활을 꾸릴 수 있도록 치료하는 일을 한다. 환자 병력을 살펴 운동능력이나 손기능, 감각능력, 인지·지각능력, 구강운동은 물론 정신·사회기술적 능력, 일상생활 동작능력을 의료진과 함께 평가하고 치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처음으로 작업치료사 면허가 발급돼 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작업치료사들이 급증한 것은 최근 일이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2013년 8천500여명이던 작업치료사가 지난해 1만4천700여명으로 급증했다. 작업치료사의 70%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데, 요양병원 비중이 높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17년 건강보험 통계연보'를 보면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작업치료사 6천258명 가운데 45.4%(2천962명)가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작업치료사들이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30분씩 환자 치료, 1시간에 5분 휴식
"생리대 갈 시간도 없어요"


9년차 작업치료사인 임미선 보건의료노조 금천수요양병원지부장은 "작업치료사들은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다"며 "폐업하는 요양병원이 워낙 많아 한 병원에서 오래 일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요양환자와 치료사를 이곳저곳 떠도는 난민에 빗대어 "환자난민, 치료사난민"이라고 부른다.

임 지부장이 일하는 금천수요양병원은 235병상 규모로, 서울 요양병원 중에서 규모가 큰 축에 속한다. 병원 이름에 '손 수(手)'자가 들어갈 정도로 '재활치료' 전문성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2012년 개원 당시 전체 직원 140여명 중 치료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가 절반인 70명을 차지했다.

규모가 큰 이곳에서도 작업치료사 노동조건은 열악한 편이다.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월급을 받으며 매일 12~13명의 환자를 돌본다. 환자 1명당 치료시간은 30분이다. 환자 두 명을 치료하고 난 뒤 5분을 쉰다. 오전 8시30분부터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오후 5시30분까지 쉴 틈 없이 일한다.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해 방광염이나 여성 질환을 달고 산다. 임 지부장은 "생리기간에는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할 정도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그들이 일하는 치료실은 원래 지하주차장이던 곳을 개조한 공간이어서 창문이 없다. 마땅한 휴게공간이 없어 치료실에서 밥을 먹은 작업치료사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8월 직원 휴게공간이 생겼지만 작업치료사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건너편 물리치료실에 휴게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도착하면 휴게시간 5분이 지나 버린다.

금천수요양병원 치료사들은 2015년 4월 노조를 결성했다. 최초의 요양병원 치료사노조다. 병원에서 근속이 쌓인 치료사들에게 '권고사직'을 강요한 것이 발단이 됐다. 중간관리자들은 "이제는 시집갈 때가 되지 않았냐"며 사직을 강요했다.

개원 당시 70명이었던 치료사는 현재 40명으로 줄었다. 40명 중 10명은 근무기간이 1개월에서 6개월 사이 아르바이트다. 남은 30명도 병원에서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다. 병원은 매년 작성하던 연봉계약서 내용을 올해 초 바꿨다. 병원은 계약서에 "2년 이하의 근로기간 동안에는 갱신기대권이 인정되지 아니하며, 별다른 합의가 없는 한 계약기간 만료로 근로관계는 종료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임 지부장은 “정규직으로 채용됐기 때문에 매년 계약기간이 명시된 연봉계약서를 쓸 때도 당연히 연봉이 적용되는 기간으로 알고 있었다”며 “하루아침에 연봉계약서가 비정규직 근로계약서로 둔갑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천수요양병원지부 조합원들은 이런 이유로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병원측은 계약서를 근거로 근로기간이 2년이 된 치료사들을 차례로 해고하고 있다. 부당해고를 호소하며 1인 시위 중인 우시은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지부는 “노조탄압을 목적으로 한 조합원 표적해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병원측은 "계약기간 만료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고 해당 작업치료사도 계약기간이 명시된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노조탄압 의혹을 부인했다.

작업치료사 10명 중 7명
"전문교육에 비해 보상 부적절"


대다수 요양병원은 근속연수가 오래된 숙련된 작업치료사 고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대한작업치료사협회가 지난해 9월 작업치료사 547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6명은 "자신의 경력에 비해 보상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68.3%는 "자신이 받은 전문교육에 비해 보상이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작업치료사 월평균 보수액(기본금에 수당과 상여금을 모두 포함한 금액)을 보면 100만원 미만이 1.83%, 100만~149만원 5.13%, 150만~199만원이 41.21%다. 작업치료사 2명 중 1명이 월 200만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치료의 질보다 치료 건수만 중시하는 불합리한 의료수가제도와 이를 악용해 공장처럼 환자를 돌리는 요양병원 시스템이 작업치료사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작업치료사협회 관계자는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작업치료사 절반 가까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사회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층"이라며 "작업치료사들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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