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우리나라 직장갑질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직장갑질119가 직장갑질 68개 항목을 조사했더니 평균점수가 35점(100점 만점)이었다. 평균점수를 넘어서는 심각한 직장갑질 항목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 37개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는 19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직장갑질 지수를 발표했다.

직장갑질 1위 “채용정보가 실제와 달라”

직장갑질 지수는 두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다. 지난 1년간 제보된 2만2천810개 직장갑질 사례를 교수·연구자 9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이 5개월간 자문·토론을 거쳐 10개 영역 68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그 뒤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빌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 8~12일 20~55세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68개 항목을 5점 척도로 물은 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지수화했다. 100점에 가까울수록 직장갑질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직장갑질 지수 평균점수는 35점이었다. 10개 영역 중에는 △승진·해고 등 인사문제(38.2점)에서 갑질이 가장 심했다. 이어 △채용과정·노동조건(37.1점) △출산·육아(36.9점) △차별·괴롭힘(35.8점) △건강·안전(35.8점) 순이었다.<그래프 참조>

68개 항목 중에서 37개(54.4%) 항목이 평균점수인 35점을 웃돌았다. 40점을 넘어서는 항목도 17개(25%)나 됐다. 평균을 넘어서는 만큼 직장갑질이 심하다는 뜻이다. “취업정보사이트 채용정보가 실제와 다르다”(47.1점)가 가장 많았고 “시간외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지급한다”(45.9점)가 뒤를 따랐다.

내가 다니는 직장 갑질지수 테스트 가능

직장내 차별과 괴롭힘 항목 지수도 높았다. “부하직원을 무시하거나 비아냥대는 말을 한다”(42.0점)와 “외모·연령·학력·지역·비정규직·성별을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는다”(40.9점)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대한 불만도 엿보인다. 직장인들은 “상사가 본인의 일을 직원에게 반복적으로 전가·강요한다”(41.7점), “업무시간 외 SNS로 업무지시를 한다”(40.1점)고 답했다.

비합리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지수도 40점을 웃돌았다. “회사에서 원하지 않는 회식문화를 강요한다”(40.2점), “비업무적인 행사(체육대회·단합대회·MT)를 강요한다”(40.2점),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시설이 없다”(43.9점)는 답변이 많았다.

비정규직(비상용직)은 정규직(상용직)보다 갑질을 더 당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지급하지 않는다”(37.2점) 질문에서 상용직(34.0점)에 비해 비상용직(42.0점) 점수가 높았다. 외국계 대기업은 68개 항목 중 12개 항목에서 50점이 넘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외국계 대기업의 경우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데 여성 직원들이 섹시한 옷을 입고 참석해야만 한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해야 하는 외국계 대기업에서 갑질이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안 국회 통과 시급”

직장갑질119는 직장갑질 지수를 다양하게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오진호 총괄스태프는 “앞으로 직장갑질 지수 공론화를 통해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음달에는 업종별·산업별 갑질지수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언론사·자동차판매 대리점·콜센터·농수축협 등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그는 “직장갑질 지수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우리 사회 직장문화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직장갑질119는 갑질지수 측정 프로그램(test-gabjil119.com)을 적극 활용하도록 홍보할 방침이다.

국회가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근기법 개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개정안만 통과돼도 직장내 괴롭힘 근절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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