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임금노동자 10명 중 2명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 날이 한 달에 10일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 날이 9일을 초과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겪는 비율이 2.427배 높았다. 노동·건강단체는 “제한 없는 하루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고무줄 노동시간제인 탄력근로제 확대를 중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노총·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민변 노동위원회를 비롯한 23개 노동·건강단체로 구성된 과로사OUT공동대책위원회가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개최한 ‘탄력근로제 확대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의 근로환경실태조사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장시간 노동자 우울·불안장애 2.4배 높아



노동시간센터가 발표한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임금노동자 34%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임금노동자 18.4%는 하루 10시간 일한 날이 한 달에 10일 이상이었다. 나머지 15.6%는 하루 10시간 일한 날이 한 달에 9일 이하였다.

센터 분석보고서는 안전보건공단이 2014년 임금노동자 3만7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차 근로환경조사 원데이터를 재분석한 것이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 날이 9일을 초과하는 경우 “가정·사회생활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비율이 그렇지 아닌 경우와 비교할 때 2.449배, “지난 12개월 동안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겪었다”는 비율은 2.427배 높았다. “지난 12개월 동안 불면증 또는 수면장애를 겪었다”는 비율은 2.06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 중 운수업에서 임금노동자의 35%가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를 한 달에 10일 이상 한다"고 답했다.

센터는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은 노동자 건강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며 “하루 8시간 주간 고정 노동자와 12시간 주야 맞교대 노동자의 생활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이어 “탄력근로제 확대는 주 52시간 상한제마저 무의미하게 만들고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해 제한 없는 하루 노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노동·건강단체 “탄력근로제 확대 과로사 조장”



과로사OUT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는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조장할 수 있다”며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탄력근로제란 이름 자체가 물타기로 제한 없는 하루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고무줄 노동시간제”라며 “주 52시간 상한제가 아직 미적용되는 300인 미만 사업장은 탄력근로 도입시 주말 16시간을 포함해 한 주 80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병욱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 1, 2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가 탄력근로제 확대로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려 한다”며 “정부·여당은 포용국가를 만들자고 하지만 그 안에는 노동자가 없다”고 비판했다.

현장 노동자들도 정부·여당의 탄력근로제 확대 시도에 반발했다.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근기법 개정으로 영화제작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노동시간단축을 기대하는 상황”이라며 “최근 탄력근로제 확대 움직임으로 주 52시간 상한제가 물 건너가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호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장은 “인천공항 지상조업 노동자는 사실상 1년 내내 탄력근로가 실시되고 있어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재벌 사용자만 배 불리는 탄력근로제 확대는 폐기해야 한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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