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조와 고 김종길씨 유가족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발방지대책 마련과 유가족에 대한 사과·보상을 요구했다. <이은영 기자>
1907년 기상통계를 시작한 이후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올해 여름, 굴삭기 노동자 고 김종길씨는 청주 공군 17전투비행단 군전용 활주로 개선공사에서 주말도 없이 일했다. 건설기계 작업일보에 따르면 공사현장에 투입된 3월11일부터 8월에 숨질 때까지 154일 동안 쉰 날은 단 13일에 불과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12일 에어컨이 고장난 굴삭기 조정석에서 일하던 그는 결국 쓰러졌다. 신호수나 관리자도 없던 일요일 허허벌판에서 혼자 작업하다 세상을 등진 그를 발견한 것은 1시간 뒤였다. 유가족과 동료들은 공사를 발주한 국방부와 공사 시행사인 한진중공업에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몸이 불편한 고 김종길씨의 아내 A씨는 지팡이에 의지해 국방부를 찾아가 호소했다.

“건설노동자는 죽어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답답합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현장에게 변사자로 발견됐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제발 국방부가 나서 주세요.”

“주 63시간 장시간 중노동 끝에 목숨 잃어”

고 김종길씨의 아내 A씨가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섰다. 그는 국방부에 물었다. 남편이 공사현장에서 스러져 간 이유가 무엇인지, 왜 남편이 1시간 방치된 채 변사자로 발견돼야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남편은 활주로 공사를 빨리 끝내야 한다며 매일같이 일하다 변사자로 발견됐다”며 “남편이 무엇 때문에 사망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를 발주한 국방부, 시행사 한진중공업과 하청업체 CMC건설 누구도 저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며 “이들은 사회적 약자인 저를 배려하기는커녕 (남편이)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법적 보호도 하지 않은 채 저를 짓밟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건설노조는 사고 이후 국방부와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세 차례 교섭을 했지만 “우리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산업재해로 처리할 수 없다”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답변만 들었다.

정민호 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무던히 덥던 올 여름 폭염 속에서도 김종길 동지는 하루 평균 9시간, 한 주 평균 63시간 노동을 했고 사고가 발생한 8월12일까지 25일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 위원장 직무대행은 “현장에 신호수라도 배치돼 있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토는 물론 국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방부가 사고 이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설노조 “노동자 사지로 내몬 국방부 면담 나서라”

노조는 기자회견 직후 재발방지대책 마련과 책임 있는 사과 및 보상을 요구하며 국방부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창권 노조 강원건설기계지부 원주굴삭기지회장은 “고 김종길 조합원의 죽음은 국방부와 시공사의 관리부실과 안전불감증이 만들어 낸 인재”라며 “국방부와 시공사가 합동으로 건설기계 노동자를 살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회장은 “국방부와 한진중공업은 한 가정을 파탄 낸 책임을 져야 한다”며 “노조·유가족과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굴삭기를 조종하던 노동자는 누구의 응급처지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눈을 감았지만 공사를 발주한 발주처도 공사를 책임지는 원청도, 누구 하나 책임 있는 재발방지대책과 보상을 비롯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며 “국방부는 국가기관으로서 사고에 책임을 지고 고인과 유족 앞에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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