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이주노조 조합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과 노동허가제 쟁취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이 동네에선 다 그래!" "우리가 피해자라고!"

지난 5월22일 이주노동자노조 투쟁투어버스(투투버스)가 찾은 충남 논산 수박밭·딸기밭 농장 앞. 열악한 노동현실을 증언하는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인근 농장주들과 동네 노인들의 욕이 쏟아졌다. 고함의 끝에는 항상 "싫으면 니네 나라로 가"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투투버스를 타고 온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는 물건이 아니다" 혹은 "우리를 노동자로 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딸기농장을 9개나 운영하면서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에게 2년간 600만원이 넘는 임금을 주지 않은 농장주는 투투버스 참가자들의 기세에 놀라 "7월에는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 권리를 외치며 산화한 지 48년이나 지났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인권에는 국경이 없는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인권은 차별·혐오·착취라는 높디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설립 이래 13년간 "만국 노동자들의 단결"을 외치며, 장벽 허물기에 나서고 있는 이주노조가 26회 전태일노동상을 받는다.

전태일재단은 8일 "이주노동자 중심의 국내 유일 노동조합으로, 13년간 끈질기게 투쟁하며 올해 '2018년 투쟁투어버스(투투버스)'를 통해 헌신적 활동을 펼친 이주노조를 2018년 전태일노동상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재단은 13일 오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리는 48주기 전태일추도식에서 전태일노동상을 시상한다. 재단과 <매일노동뉴스>는 전태일노동상 선정·시상을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다.

피땀으로 일군 이주노조 합법화 10년

이주노조는 2005년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창립했다. 2015년 6월25일 대법원이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까지 딱 10년 걸렸다.

10년간 노조설립을 주도하고 투쟁했던 이주노조 지도부는 '불법체류자'라는 이름으로 강제추방을 당하기 일쑤였다. 아노아르 후세인 초대 위원장, 까지만 위원장, 라쥬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 토르너 위원장, 소부르 부위원장,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에 대한 표적단속과 강제출국이 잇따랐다.

전태일노동상 심사위원회는 "이주노조 합법화 10년의 역사는 착취와 탄압에 맞서 피땀으로 써내려 간 고난의 투쟁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이주노조가 합법화하고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그럼에도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저임금·강제노동은 물론이고 아직도 폭언·폭행·성희롱에 노출돼 있다. 이주노조가 올해 5월 한 달간 투투버스로 전국을 순회한 이유다. 이주노조는 서울·의정부·여주·성남·화성·충주·논산·대전·세종을 돌며 이주노동자 노동권을 침해한 사업장과 관할 고용센터를 찾아가 항의하고 실태를 알렸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여러 사업장을 돌았는데 사업주들은 도망가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안좋았다"고 말했다.

라이 위원장은 "그래도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관련 지침을 개정하고, 우리를 대하는 고용센터 직원들의 태도가 예전보다 달라진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만국의 노동자 권리 쟁취 위해 노력하겠다"

최근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기점으로 한국에서 난민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이 날로 커지고 있다. 경제 지표가 나빠지면서 불똥이 엉뚱한 이주노동자들에게로 튀기도 한다.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주장이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을 일자리를 뺏는 존재로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며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사업주만 이득을 보고, 노동자들은 피해자로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모두 단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그는 "이주노조도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 만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주노조의 전태일노동상 수상이 국제연대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한국 노동운동이 이주노동자와 연대하고, 더 나아가 국경이 있을 수 없는 노동과 인권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국제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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