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영호 건설노조 조직국장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3개월 앞둔 지난해 2월 <주간 문재인 6호>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가리켜 "이상한 사장님"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영상에서 "특수고용직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1년9개월이 지난 2018년 11월 현재 문재인 정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년 넘게 "실태조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장 노조간부와 노동자들이 '이상한 사장님'으로 사는 고충을 담은 글을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건설기계·화물운송·플랫폼 노동자와 방송작가·경마기수·제화노동자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한다.<편집자>

나는 건설현장에서 일해 본 적이 없다. 대형운전면허나 여타 건설기계장비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군대에 있을 때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을 공부했다. 제대를 한 뒤에는 건설노조의 한 건설기계지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로 건설기계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자신의 장비를 소유하고 있다. 현장이 개설되면 ‘임대’ 형식으로 들어가 일을 한다. 근로계약서가 아닌 임대차계약서를 써야 하며, 지참 서류에는 개인사업자 등록증이 있다. 그러다 보니 건설산업기본법·건설기계관리법 같은 건설산업을 관장하는 법들을 주로 봐야 한다.

건설노조 조합원인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장비에는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글자가 적힌 비표(스티커)가 붙어 있다. 2000년 레미콘 노동자들은 운송료 현실화와 노예계약서나 다름없는 도급계약서 폐지 등을 요구하며 건설운송노동조합을 결성했다. 2004년 덤프 노동자들은 과적을 하면 범법자가 되는 현실에 반발해 덤프연대를 결성했다. 2007년 건설노조가 창립되며 굴삭기·크레인을 포함해 모든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노조와 함께하게 됐다. 불안정한 고용과 각종 체불, 안전사고에 대한 보상 문제 때문에 노조 문을 두드렸다.

27개 직종 건설기계를 운행하는 노동자들. 자신들을 '사장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실은 노동자로서의 지위가 없어 여러 가지 문제를 겪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하루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전국적인 투쟁을 해야 했다. 길게는 6개월 어음으로 대금을 지급하고, 그마저도 안되면 만세 부르고(부도내고), 돈 안 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노동자라면 현금으로 받고, 체불에 대한 보호대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고가 발생하면 본인이 모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건설노조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법·제도 개선투쟁을 했다. 많은 내용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대책, 즉 근로기준법과 그에 파생되는 각종 법을 부분적으로라도 적용해 달라는 요구였다. 체불을 방지하기 위해 발주처나 원청이 임대료를 직접 지급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했고, 건설기계대여대금 지급보증제도라는 것을 만들었다.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각종 노동조건을 정확히 명시하도록 했다. 최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에 건설기계 27개 직종을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만들기도 했다.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상 퇴직공제부금을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하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2명의 동지가 여의도 철탑에 올라갔지만 끝내 법 개정이 되지 않은 적도 있다.

단결권과 노조할 권리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기본권이 쟁취된다고 해서 당장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건설사들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8시간 노동을 기본으로 할 의무도, 3년치 임금과 3개월치 퇴직금을 우선 지급할 이유도, 안전사고를 보상할 의무도, 해고예고통보를 할 의무도 없고 법적 책임도 없다. 여전히 근로계약서가 아닌 임대차계약서를 써야 할 것이다.

다만 단체협약서를 써서 8시간 노동을 하고, 체불방지 조항을 넣고, 안전사고에 대해 보상받고, 해고를 마음대로 못하게 할 수는 있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필요할 것이고, 그에 걸맞은 합법적인 지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조합원들의 손으로 뽑은 건설노조 위원장이 건설기계를 운행한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대표자명의변경을 해 주지 않는다.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맺으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이라며 단협을 파기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온전하게 단결할 권리를 누리기 위해 노조법상 노조를 할 수 있는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10년 넘게 했지만 여전히 한계는 많다. 조합원끼리도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부른다. 평소에는 사장님, 체불되면 노동자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일부 조합원들의 욕심이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싸워 온 여러 조합원들의 진심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한계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사장님의 노동조합이 아닌, 진짜 건설노동자의 노동조합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 투쟁을 해야 한다. 사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반 건설노동자들 역시 상시적 고용관계가 없어 사업주가 없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인정받지 못한 세월이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활동을 이어 나갔기에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0년 넘게 투쟁했는데도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노동조합답게 계속 싸워야 한다. 그 길이 가짜 사장님이 아닌 진짜 노동자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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