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다. 공약 이행은 더디기만 하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다루고 있으나, 논의가 순탄치 않다. 선 비준-후 입법론이나 선 입법-후 비준론처럼 비준 절차·방법에서도 이견이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 이후 국내 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민주노총 법률원이 ILO 협약 비준 절차와 ILO 협약을 비준하면 달라지는 국내 법·제도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6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역사는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회복해 가는 역사였다. 독재정권은 집단화된 시민인 노동조합의 요구가 공장 담장을 넘지 못하도록 기업별노조를 강제하고, 3자 개입 금지, 정치활동 금지를 통한 교섭권과 쟁의권 제한으로 노동에 대한 시민의 정치적 전략을 배제해 왔다.

노동 3권은 정치적 자유의 대전제

노동조합은 단순한 이익단체가 아니라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자 민주사회 운영의 기초를 다지는 교육의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노조설립 자유주의와 교섭의 자유,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자유 보장 수준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바로미터이자 노조할 권리의 핵심원칙이 된다. 그렇다면 정치민주화를 거듭해 온 지금의 노조법, 단체교섭할 자유는 온전한 민주주의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과거 복수노조 금지 제도는 단결금지를 통해 교섭권과 쟁의권 행사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노동 3권을 통제했다면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사업장단위 교섭강제를 통해 단결권과 쟁의권을 차단하는 또 다른 노동 3권 통제방식이다.

현행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는 본질적으로 “사업장단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다. 사업장을 교섭단위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만 교섭권을 인정하고, 다른 교섭단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노사합의에 따른 교섭단위 분리는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당국의 분리결정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특히 교섭단위 확장이나 통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단위 교섭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초기업별 교섭도 모두 봉쇄된다.

창구단일화 제도는 사업장단위 교섭강제 제도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위해 특정한 산업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를 인정해야 한다”고 봤고 다른 한편으로 “기업체 내 과반노조가 전국단위 대표적인 연합단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기업체 교섭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해서 단체교섭 자유에 대한 온전한 보장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교섭단위를 지역단위로 정해 지역단위 교섭단체를 요하는 법 규정에 대해서도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한 단체를 설립하고 이런 단체에 가입할 권리 및 완전히 자유롭게 대표를 선택할 권리에 대한 제한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와 같이 특정한 교섭단위만을 전제로 교섭하도록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특정한 노동조합 설립을 제한하는 제도가 된다면 결사의 자유 침해에 해당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창구단일화 절차는 사용자에 의한 차별을 유인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가장 대표적인 노동조합이 배타적인 권리를 지니는 단체교섭 제도와 한 사업장 내에서 복수의 노동조합이 복수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제도 모두를 결사의 자유와 교섭자율의 원칙상 허용된다고 본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노동조합에 대한 결정에 편견과 남용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객관적이며 사전에 결정된 정확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결정하고 있다. 따라서 교섭대표노동조합을 결정하는 절차와 각 노조별 개별교섭 절차를 오직 사용자의 선택에 의해서만 결정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창구단일화 제도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가장 대표적인 노동조합 결정 여부가 불확정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므로 ILO 기준에 부합된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창구단일화 제도 도입 이후 사용자들이 노조파괴를 위해 제2 노조 설립과 조직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로 개별교섭 동의절차를 활용해 노동조합 간 차별의 부당노동행위를 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현행 창구단일화 제도는 ILO 98호 협약 2조2항에서 말하는 ‘노동조합을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의 지배 하에 둘 목적으로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에 의해 지배되는 노동조합의 설립을 촉진하거나 재정 기타의 방법으로 지원하는 간섭행위’에 근본적으로 취약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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