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와 반올림 회원들이 지난 7월2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문송면, 원진 30주기 추모와 반올림 농성 1천일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1년 이상 일한 노동자들이 백혈병 같은 질병에 걸리면 삼성 지원을 받게 된다. 삼성전자는 사업장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사과입장을 조만간 발표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1일 최종 중재판정 및 권고를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양측 합의에 따라 조정위가 중재안을 만들기 시작한 지 석 달 만이다.

보상범위 넓히고 액수 줄였다

조정위는 중재안에서 보상범위는 넓히고 보상액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상보다 낮게 설정했다. 우선 지원보상 대상을 크게 넓혔다. 삼성전자 최초의 반도체 양산라인인 기흥사업장 1라인이 준공된 1984년 5월17일 이후 반도체·LCD 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한 삼성전자 재직자·퇴직자와 사내협력업체 재직자·퇴직자 전원을 대상에 넣었다. 다만 삼성전자를 포함해 다수의 반도체공장을 오가며 일하는 협력사 노동자들은 대상에서 빠졌다. 보상기간은 2028년 10월31일까지다. 2028년 이후 보상은 별도로 정한다.

지원보상 질병범위는 백혈병·비호지킨림프종·다발성골수종·폐암 등 16종의 암으로 정했다. 반도체·LCD와 관련해 논란이 됐던 암 중에서 갑상선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암을 포함했다는 것이 조정위 설명이다. 희귀암 중에서도 환경성 질환은 모두 지원보상 질병범위에 들어갔다. 다발성경화증·쇼그렌증후군·근위축성측삭경화증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고 알려진 희귀질환 전체는 물론이고, 유산·사산 같은 생식질환과 선천성 기형·소아암 같은 자녀질환도 지원보상 질병범위에 포함된다.

조정위는 노동자가 암에 걸릴 경우 보상액은 근무장소·근속기간·발병연령·질병의 세부 중증도를 고려해 백혈병은 최대 1억5천만원, 비호지킨림프종·뇌종양·다발성골수종은 1억3천500만원으로 정했다. 희귀질환과 자녀질환은 최초진단비 500만원과 완치시까지 매년 최대 300만원을 지원한다. 유산은 1회당 100만원, 사산은 1회당 300만원을 보상한다. 최대 3회까지 지원한다. 보상액 관리는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합의해 선정한 제3의 기관에 위탁한다. 별도 지원보상위원회를 구성해 지원보상을 감독한다. 반올림 소속 피해자 53명은 삼성전자의 기존 보상규정과 중재안에 따른 보상 중 피해자에게 유리한 것을 택하도록 했다.

삼성전자는 산업재해 발생을 공개적으로 사과한다. 조정위는 "대표이사가 반올림 피해자와 가족을 초청해 기자회견 등의 공개방식으로 사과문을 낭독하라"고 주문했다.

피해자 보상과 별도로 삼성전자는 재발방지와 사회공헌 차원에서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출연한다. 기금은 삼성과 반올림이 정하는 공공기관에 기탁한다. 삼성과 반올림은 조정안 이행을 약속하는 협약식을 이달 30일 이전에 개최한다.

삼성전자·반올림 "조건 없이 수용" 11월 중 협약식

조정위는 권고에서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이른바 직업병 문제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풀어 나갈지 각자의 입장에서 꾸준한 노력을 해 나갈 것을 권고한다"며 "노동건강인권선언을 공동으로 하고, 삼성전자는 반도체·LCD 사업장 외의 유사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보상 문제 역시 이 사례를 참고삼아 풀어 나갈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김지형 위원장은 "좀처럼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중재합의가 이뤄졌고 최종 중재판정까지 내리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근원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며 "조정 및 중재 사건을 계기로 삼아 우리 사회가 노동자 건강권 보장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올해 7월 '조건 없는 중재안 수용'에 합의했다. 삼성전자측은 이날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서둘러 구체적인 이행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반올림 관계자는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이 많은 상황을 감안해 중재안이 신속 정확하게 이행됐으면 좋겠다"며 "중재안 수용 합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번 최종 중재판정으로 삼성전자 직업병 사건은 사실상 해결 수순에 접어들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노동자 황유미(사망당시 23세)씨가 백혈병에 걸려 2007년 3월 숨진 뒤 11년8개월 만의 일이다. 고인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며 결성한 조직이 반올림이다. 지금까지 320여명의 직업병 의심 노동자가 반올림을 찾았다. 이 중 120여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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