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다. 공약 이행은 더디기만 하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다루고 있으나, 논의가 순탄치 않다. 선 비준-후 입법론이나 선 입법-후 비준론처럼 비준 절차·방법에서도 이견이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 이후 국내 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민주노총 법률원이 ILO 협약 비준 절차와 ILO 협약을 비준하면 달라지는 국내 법·제도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6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1. 정부는 비준할 의지가 있나

2019년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혀 왔다. 기본협약은 노동기본권 관련 4개 원칙에 관한 8개 기본협약을 말한다. 이 중 한국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2개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2개 협약(29호·105호)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기본협약 비준에 관한 모든 사항을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에 맡기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11차례 개최되는 동안 노동계와 공익은 기본협약 비준 필요성과 시급성에 의견을 모았지만 경영계는 노골적으로 반대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영계에 대한 정부 입장은 모호하다. 비준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2. 기본협약 비준은 이행하고 집행할 사항

우선 지적할 것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본협약들은 한국이 ILO에서 탈퇴하지 않는 한 이를 준수할 법적 의무가 이미 발생했다는 것이다. 1998년 ILO가 채택한 '노동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은 "모든 ILO 회원국이 설령 위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회원국이라는 사실 자체로부터 기본협약에 따른 원리와 권리를 존중하고 증진하며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 13장(Trade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의 13.4조3항에서도 기본협약 비준을 협약당사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어서, EU측의 이의제기 정도에 따라서는 정부 간 협의나 전문가 패널 소집절차까지 진행될 여지도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10월 한·EU 정상회담에서도 EU측에 의해 한국의 기본협약 미비준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또 기본협약의 내용이 FTA에 반영돼 있는 경우도 한미 FTA를 포함해 7개나 된다. 따라서 한국이 ILO를 아예 탈퇴하거나 각종 FTA를 파기할 것이 아니라면 한국의 행정부·사법부·입법부는 기본협약에 따라 법을 집행하고, 해석하며, 입법을 하는 등 ‘이행’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관행 개선위에서 기본협약 비준 문제가 마치 새로운 합의가 필요한 사항처럼 논의되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당한 일이다. 개선위에서는 기본협약을 어떻게 잘 이행하고 집행할 수 있는지가 논의 주제가 돼야 한다.

3. 비준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기본협약 문제는 본래 비준이 아니라 이행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준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국내적으로 보면 한국은 정부나 국회뿐 아니라 사법부도 기본협약을 재판규범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는 2006헌마518 결정 등 여러 사안에서 위 기본협약을 한국이 비준한 바 없으므로 효력이 없다고 보고 헌법 6조1항에서 정한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로서의 효력도 일관되게 부정하고 있다. 대법원도 유사한 취지로 판결한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비준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둘째, 국제적으로 보면 기본협약과 국내 법·제도·관행의 일치 여부(이행)에 대한 ILO의 감시감독을 수락한다는 뜻이다. 즉 노동조합은 ILO 헌장 22조에 따른 일반절차(Regular reporting)와 24조에 따른 진정(Representation)을 활용할 수 있고, 기본협약을 비준한 다른 회원국이 한국을 26조에 따라 제소(Complaint)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한국이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아서 대표적인 노동자단체가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제소한 사항만 다뤄 왔으나, 비준 후에는 협약 이행을 감시·감독할 방법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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