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오라클노조가 29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 고 배유신 조합원 사망사고에 대한 성실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한국오라클노조(위원장 안종철) 파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노동자가 업무에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검으로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유족은 "사망 70일이 지나도록 경찰이 사인 등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고 반발했다. 회사 안에서는 "해고통보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거나 "타살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도는 실정이다.

노조는 29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철저한 수사로 고 배유신 조합원 사인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파업 복귀 보름 만에 주검으로, 사망원인 오리무중

한국오라클 노동자들은 10년 임금동결과 잦은 조직개편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노조를 만들었다. 회사와의 교섭이 결렬되자 올해 5월16일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중 교섭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자 7월31일부터 간부파업으로 전환했다. 조합원들은 8월6일 현장에 복귀했다. 고 배유신(34)씨는 파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조합원 중 한 명이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8월19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자신의 집을 나섰다. 한강 선유도공원 한 카페에 수 시간 동안 홀로 있었다. 그런 다음 이튿날 새벽 공원 인근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익사로 알려졌다. 고인은 사고 전 특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유족은 전했다.

노조는 죽음이 알려진 뒤 회사 대응이 수상하다고 주장했다. 부서 관리자는 8월20일 오전 고인이 출근하지 않자 곧바로 친형에게 연락해 "실종신고를 하시라"고 말했다. 부서 책임자는 같은달 22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국과수 검시 결과 타살 정황으로 볼 수 있는 약물이 검출돼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노조 관계자는 "경찰은 8월25일 장례식 발인을 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익사라는 입장을 유족과 노조에 전달했다"며 "고인 죽음에 대해 회사 책임론이 나올 것을 차단하기 위해 근거도 없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오라클은 "동료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만 밝혔다.

'타살·해고통보 후 자살' 소문 무성
명예 회복 위해 진상규명 시급


사인이 밝혀지지 않으면서 회사 내에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하다. 죽기 전 해고통보를 받았다는 풍문이 대표적이다. 노조는 "고인의 명예와 미확인 사실 유포를 차단하기 위해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종철 위원장은 "30대 젊은 엔지니어가 죽은 지 70일이 지났지만 유족도 죽음의 원인을 모르고 있다"며 "회사 말대로 타살인지, 조합활동에 따른 회사 압박을 괴로워했던 것인지, 단순 사고였던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고인은 죽기 전 회사 소유의 노트북과 태블릿 PC·법인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며 "회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나 압박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메일·문자 송수신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라서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고인은 친형과 고령의 부모를 유족으로 두고 있다. 최근 부친은 "회사·경찰서 앞 1인 시위를 해서라도 아들이 죽은 원인을 밝혀내고 싶다"는 입장을 노조에 전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유족 동의하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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