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한석호

3개월 뒤로 예정된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 관한 얘기다. 물론 핵심 안건으로 예고된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가 문제에 관한 얘기다.

지난 17일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가 유회될 수 있다는 불길한 전망은 두어 달 전부터 감지됐다. 경고등이 깜빡거렸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양새로 무산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논의는 하다가 성원이 빠져 유회될 것이라는 정도의 예상이었다. 2년 전 정책대대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개회를 하지 못했다. 경사노위 참가 여부에 대한 현장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이유를 찾을 것이다. 뒷자리에서는 누군가 상대방을 향해 책임을 전가하고 있을 것이다. 미주알고주알 보탤 생각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이해하려 해도 당최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있어서 거론해 볼까 한다. 경사노위 참가를 둘러싼 상황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를 많은 이들이 공개 또는 비공개로 조언하면서 이 방안 저 방안 제안한 것으로 아는데 그것이 왜 정부에서든 민주노총에서든 진지하게, 또 중단 없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이가 안팎에 많은 것 같은데, 왜 그들을 모으지 못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의하면서 방안을 강구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나름대로의 자리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해 볼까 했다가 자포자기로 돌아선 이들도 있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내버려 두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아무튼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가 혹은 불참 문제는 3개월 뒤로 예고된 정기대대로 넘어갔다. 정기대대에서 개회선언조차 못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건이 처리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논의하다가 성원이 부족해 표결을 못할 수 있고, 표결은 하는데 어떤 상정안도 과반을 넘기지 못할 수 있다. 지난 집행부 때 정치방침을 둘러싸고 경험한 바 있다.

만약 또 그렇게 된다면 민주노총은 몹시 난처한 상황에 빠질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책임 공방에 휩싸일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투쟁도 교섭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한데 왠지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떠나지 않는다. 지난 정책대대를 앞두고 켜졌던 경고등이 정기대대까지 3개월 기간에도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뭔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

민주노총 핵심 집행부는 특단의 고민을 해야 한다. 몇몇의 머리나 경험만으로 풀어 갈 수 있는 민주노총이 아니다. 어느 한 세력이 절치부심하며 끙끙댄다고 해서 지도·집행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아니다. 권영길·단병호·이수호의 카리스마 시대에도 그것이 안 됐는데, 하물며 고만고만한 수준의 지금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답은 간단하다. 더 많은 의기투합을 만들면 된다. 의기투합하려면 무엇보다 소통부터 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 만약이다. 이런 일을 상상해 보자. 명색이 민주노총 임원이고 상임집행위원인데 사회적 대화의 중요한 진행 상황을 곁다리나 언론을 통해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런 상태에서 의기투합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혹여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세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똑똑한 몇몇이 모여 백날 백 밤 끙끙댄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또 있다. 의기투합은 비판과 반대 의견을 사업과 체계에 깊숙이 끌어들이는 불편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마음 맞는 몇몇끼리 얘기하고 모색하면 편하기는 하다. 잠시 사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면 목표를 향해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거기서 망하기 시작한다.

이전 칼럼과 이런저런 통로로 제안한 내용이다. 민주노총은 교섭전략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노사정대표자회의든 경사노위든 사회적 교섭은 총연맹 집행부 몇몇이 붙들고 가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집단의 지혜가 모여도 벅찬 사안이다. 자본이나 정부로부터 뒤통수 얻어맞기 십상인 사안이다. 총연맹 역량을 더 보강하고, 산별연맹·지역본부의 책임 있는 임원과 담당자를 모아야 한다. 바깥 역량도 모을 수 있으면 모아야 한다. 교섭전략위원회에는 반대와 비판 의견을 포함해야 한다. 거기에서 수시로 보고하고 논쟁도 하면서 전략·전술을 짜야 한다. 그러면 분명 속도는 더딜 것이다. 그래서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결과가 나빠도 과정이 좋으면 용서가 되면서 함께 책임지는 것이 민주노총 풍토다. 남은 3개월 민주노총의 의기투합을 이끌어 내는 책임의 출발은 핵심 집행부에게 있다. 건투를 빈다.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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