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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난민·성소수자에게 열린 문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단식·고공 농성자 사회적 약자에게 병원비 부담 없이 의료서비스 제공
▲ 녹색병원
병원 문턱은 높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에게 병원은 먼 곳이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녹색병원은 다르다.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픈 이들이 모여 ‘산재와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사람,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 모두가 존중받고 위로받으며 치유하는 공간’을 꿈꾸며 세운 곳이기 때문이다.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센터장 이보라)는 그러한 정신이 녹아 있는 곳이다.

지난 26일 <매일노동뉴스>가 인권치유센터를 찾았다. 병원 입구에는 ‘서울 인권현장 표지석’이 있다. 2016년 서울시가 인권사적 가치가 높은 근현대 인권현장으로 선정해 표지석을 설치했다. 표지석에는 녹색병원 설립일(2003년 9월20일)과 함께 “이곳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들과 시민사회가 함께 일궈 낸 전문의료기관”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인권치유센터는 병원 1층 로비를 지나 환자와 보호자들이 접수하는 원무과로 들어서기 직전에 있었다. 이보라 센터장(내과 전문의)은 “인권치유센터를 찾는 환자들은 원무과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와서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하고 의료진을 만난다”고 설명했다. 처음 병원을 찾을 때부터 ‘문턱’을 느끼지 않도록 한 병원의 마음씀씀이가 느껴졌다.

아픈 사람 누구나 치료하는 인권현장

녹색병원은 2015년부터 ‘인권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피해자 진료사업을 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용산참사 피해자·북한 이탈주민 등이 이곳을 거쳐갔다. 간첩조작사건으로 고문을 받고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한 고문피해자도 보살핌을 받았다.

인권클리닉은 지난해 인권치유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사회적 약자와 인권피해자를 돕는 인권활동가를 위한 건강지원사업과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클리닉 같은 사업이 더해졌다. 올해는 서울시와 ‘공공의료수행기관 협약’을 맺고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사업 시행 의료기관’과 ‘산재·직업병, 인권침해 피해자를 위한 서울시 지정 안전망병원’ 사업을 수행하면서 활동범위를 넓혔다.

예멘 난민 살레씨는 이달 2일 센터를 찾았다. 그는 한국과 예멘 간 무역업을 하다 내전을 피해 2014년 5월 한국으로 건너왔다. 난민 신청을 했지만 승인을 거부당했다. 지금은 2개월마다 체류허가를 갱신하며 살고 있다. 여권과 함께 들고 다니는 체류허가 서류에는 '취업불가' 도장이 찍혀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와중에 올해 9월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집에서 일주일간 통증을 버티다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비가 700만~800만원 정도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치료를 포기했다. 그런 살레씨에게 한국인 지인이 녹색병원을 소개했다. 입원치료를 받은 그는 지난 19일 “다리 통증이 사라져 너무 행복하다”며 웃는 얼굴로 퇴원했다.

센터 상담업무를 맡고 있는 양주희 사회복지사는 “살레씨는 국내에서 4년 가까이 체류하면서 일을 못하는 바람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모친에게서 생활비를 보조받을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다”며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한 채로 한 달 가까이 버티다가 병원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센터 모토는 ‘차별 없는 진료’

지난해 센터를 다녀간 사람은 114명이다. 고공·단식농성을 한 노동자가 51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두 번째는 성소수자(27명)들이다. 이들은 병원비 문제보다 성소수자를 보는 시선 때문에 진료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병원 수속을 밟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성전환수술을 했다면 더욱 힘들어진다. 센터는 ‘차별 없는 진료’를 모토로 성소수자들을 보듬는다. 녹색병원 산부인과에서 유독 많은 이들이 성전환수술과 호르몬치료를 받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건강권은 인간이라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돈이 없어서, 법을 어겨서, 성정체성이 달라서, 대한민국 국적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보라 센터장에게 “인권치유센터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고공농성이나 단식농성이 없어도, 누군가가 자신의 건강을 훼손하면서까지 처절하게 알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건강한 세상은 누구나 평등한 세상이라는 얘기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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