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우리나라 정보기술(IT)업계의 공룡 네이버(NAVER)에서 노조 깃발이 올랐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지회장 오세윤)다. 네이버 설립 19년 만에 탄생한 노조는 여러모로 관심을 모았다. 노조 불모지대인 IT업계에서 대표주자인 네이버가 처음으로 노사관계 시험대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네이버 노사는 5월11일 처음으로 교섭테이블에 마주앉았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는 '새로운 노사문화가 만들어지는 데 좋은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시작은 좋았으나 교섭은 순조롭지 못하다.

거미줄같이 엮인 네이버 계열사
단체교섭 대상 법인만 16개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1999년 6월 네이버컴㈜가 설립하면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네이버가 자사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주요 자회사만 해도 라인(모바일 메신저)을 비롯해 네이버랩스(소프트웨어 개발)·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IT인프라 지원)·웹툰(웹툰 플랫폼 운영)·웍스 모바일(기업용 전자상거래 지원) 등 5개가 넘는다. 자회사 아래에는 또 각각의 손자회사가 있다. 라인만 하더라도 라인플러스를 비롯해 9개의 손자회사가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네이버지회 관계자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독립법인으로 분리되는 추세"라며 "인수합병이나 법인 신설이 워낙 많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노조 가입 대상이 43개 법인에 근무하는 8천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회는 이 가운데 조합원이 있는 16개 법인에 단체교섭 공문을 보냈다. 당초 지회는 16개 법인과 하나의 교섭테이블을 운영하는 통합교섭을 실시하려고 했다. 자회사나 손자회사라 하더라도 네이버가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어 절대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는 "법인 특수성이 있어 법인 대표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결국 16개 법인별로 교섭을 하기로 했다. 지회는 네이버 본사와 NBP·컴파트너스 세 곳을 선정해 교섭에 들어갔다.

"네이버, 노조를 사원협의회로 생각"

지회가 첫 단체교섭에서 제시한 핵심 요구안은 △객관적인 평가시스템 마련 △리프레시 휴가 확대 등 충분한 휴식권 보장 △개인 메신저를 통한 업무지시 금지 등이다. 교섭을 시작하기 전에 비조합원을 포함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요구안을 확정했다.

그런데 회사는 지회 요구안에 의견을 내지 않다가 지난달 18일 9차 교섭에서 "휴식권 같은 복리후생은 비조합원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단체교섭이 아닌 별도 TF를 구성해 합의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지회는 반발했다. 지회는 "단체교섭이 아닌 비조합원을 포함하는 별도 TF를 만들자는 것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 18일 열린 10차 교섭에서도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여기에 회사가 협정근로자 지정(쟁의행위에 참가할 수 없는 조합원 범위를 단체협약으로 정하는 것)까지 요구하면서 교섭은 중단됐다. 지회는 이달 25일까지 '비조합원 TF 구성' 입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조정신청 등 교섭 결렬에 따른 절차를 밟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노조쪽 교섭대표인 임영국 노조 사무처장은 "네이버지회가 설립된 가장 큰 배경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초기에 수평적 조직문화가 수직·관료적으로 변하고, IT산업의 핵심인 활발한 소통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인데 노사 간 교섭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며 "회사가 노조를 과거에 임의로 만들었던 사원협의회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회는 대화가 진전되지 않으면 단체행동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파업 수순을 밟기보다는 IT노동자 특성을 살린 단체행동을 기획하고 있다.

네이버지회 설립 이후 넥슨·스마일게이트 등 게임업체에서도 잇따라 노조가 설립됐다. 이들도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단체교섭에 들어간다. IT노동자의 시선이 네이버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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