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13일께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31번째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11월13일은 전태일 동지가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육신을 불살라 노동운동 제단에 바친 날이다. 이날을 기념하며 전태일 동지 정신을 올곧게 계승해 노동해방·인간해방을 앞당기자는 다짐을 하고자 전국 노동자들이 한데 모이는 것이다.

노동자대회는 1988년 첫 번째 대회부터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민주적인 노동법을 쟁취하는 것을 노동운동의 주요 투쟁과제로 결의했다. 첫 번째 대회 명칭은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 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였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노동현실은 열악하기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도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전태일 동지가 산화한 50여년 전이나 첫 노동자대회가 열렸던 30년 전에는 노동현실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다. 이런 노동현실은 생산력이 낙후한 때문인 면도 있지만 생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즉 생산관계의 천민성과 반동성 때문인 면이 더 크고 결정적이다. 군사독재정권을 비롯해 자본독재정권이 내내 노동계급에게 독재통치를 했던 것이다.

자본독재 체제의 하위 체제가 노사관계 체제다. 노사관계 체제는 집단적 노사관계와 개별적 노사관계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두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노동관계법이다.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고 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이다. 이 가운데 더 중하고 결정적인 것이 노조법이다. 노동조건의 열악함은 일차적으로는 근기법으로 나타나지만, 근기법의 내용을 정하거나 그 법을 지키게 하는 것은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힘이기 때문이다.

개개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노동조합이 있어야 하며, 나아가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노동법이 자유로운 노동조합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근기법을 제정 또는 개선할 수 있고, 사용자로 하여금 근기법을 지키게 만들 수도 있다. 전태일 동지가 근기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지켜지지도 않는 근기법 책자를 자신의 몸과 함께 불사르면서 친구들에게 꼭 노동조합을 만들어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다그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시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을 내걸고 반노동자적인 집단적 노사관계법 개정을 줄기차게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이런 문제의식은 희석 또는 실종돼 왔다. 간혹 개별적 노사관계법 개악에 반대하는 요구가 제출·결의됐으나 집단적 노사관계 악법을 철폐시키겠다는 요구는 거의 제출되지 않았다.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법률이 충분히 민주적으로 변혁됐기 때문인가? 무분별한 정리해고 실시나 비정규직 양산 등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에 반대하고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노동유연화를 막기 위해서도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악법들을 철폐해 노동조합활동을 자유롭게 하고 노동계급의 힘을 키워야만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에서는 최근 정책대의원대회를 열면서 이런 기본적인 정책과제 대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가를 중점과제로 올려놓고 회의를 열었다가 성원 미달로 무산됐다고 한다.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현행 노조법은 독소조항투성이다. 노동운동은 1998년 노동법 개정으로 상급단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폐지시켰지만, 그 대신 개별적 노사관계에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대폭 받아들이면서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노동운동을 통제·억압하는 조항들도 다수 받아들였던 것이다. 노동문제 전문가들도 이 지점을 비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첫째, 노동조합의 정치운동을 부정하는 조항이다. 노조법 2조4호 마목이다. 이 조항을 철폐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은 정치파업을 할 수 없고 단지 정당과 공직 후보자에게 돈을 대고 표를 몰아줄 수 있을 뿐이다. 둘째, 교사와 공무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심하게 제약하는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과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문제다. 이 특별법은 교섭권·파업권 제약은 물론이고 단결권에서도 교사·공무원들끼리만, 그것도 현직 교사·공무원끼리만 단결할 수 있게 족쇄를 채워 놓고 있다. 셋째, 외형상 자영업자 형태를 띤 200만여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노동자 자율에 맡기지 않고 통제하고 있다. 넷째, 공공부문 노동조합에 필수공익요원을 뺀 파업만 할 수 있도록 족쇄를 채워 무력화하고 있다. 다섯째, 쟁의행위에 대해 조합원 가부투표를 강제함으로써 총연합단체 파업을 사실상 불허하고 있다. 여섯째,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과 관련해 체결권이 대표자에게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잠정합의안을 조합원 인준투표에 부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대표자가 노조규약을 어기고 조합원 인준투표 없이 합의안에 서명하더라도 법적으로 유효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일곱째, 현장의 비공인파업을 금지하고 있다. 여덟째,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으로 군사파쇼 노동체제의 대표적인 악법인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폐지한 의미를 깡그리 무효화하고 있다. 아홉째, 전임자임금 지급을 제한하는 타임오프제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합활동을 무력화하고 있다. 열째, 노조 연합단체에서 산업별 연합단체만 인정하고 지역별 연합단체는 부정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의 지역적 단결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악법이다.

여기서 언급한 악법조항 중 상당수는 전노협의 급진적 노동운동을 해체시키기 위해 자본측이 끈질기게 공작해서 빼앗아 간 것들이다. 촛불혁명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노동운동은 무엇보다 먼저 그동안 빼앗겼던 것을 되찾기 위해 총력투쟁을 해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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