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우리의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친숙한 노동 중 하나는 택배노동입니다. 대표적인 특수고용 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부인되고 있는 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등 노동법상의 제반 보호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점, 하루 7시간가량 대가 없이 배송물품 분류작업을 하는 등 소위 '공짜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점, 고객과 택배회사 양측에서 ‘갑질’을 당하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점, 상시적으로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상황인지라 각종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는 점. 택배기사들을 자주 접해서 그런지 위와 같은 애환 어린 이야기는 참 공감이 됩니다.

제가 법률원에 들어와 처음 담당하게 된 사건 중 하나는 택배기사들의 수수료에 관한 소송이었습니다. 경주지역 택배연대노조 조합원들과 대리점주 사이에 수수료 지급의무에 관해 다툼이 있었습니다. 대리점 사장은 도급 형식으로 꾸민 계약을 체결한 뒤 택배기사들이 배송한 물품 건수에 비례해 수수료를 지급해 왔습니다. 그런데 2017년 5월께 사장은 조합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수수료 중 일부를 임의로 공제했습니다.

사장이 수수료 일부를 임의로 공제하며 제시한 사유는 조합원들의 질병으로 인한 결근, 규격 위반 품목에 대한 배송 거절이었습니다. 후자와 관련해 보통 택배회사에 배송을 맡길 때 택배회사가 요구하는 배송 규격이 있습니다. 대형 품목의 경우 가로·세로·높이 합계가 160센티미터를 초과해서는 안 되는 등 일반적인 서비스로는 운송이 제한되는 규격의 화물이 있습니다. 택배회사의 배송물품 규격 기준을 위반한 상품을 소위 '이형화물'이라고 합니다. 이형화물은 배송물품 분류작업 중 기계 오작동을 야기하고, 배송 지연이나 파손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아 업계에서는 상당한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형화물로 인해 반송·파손·배송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고객들에게서 상당한 컴플레인이 들어오는데, 이러한 컴플레인은 오로지 택배기사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나아가 지나치게 부피가 큰 이형화물은 택배차량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잡아먹어 택배기사들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배송업무 건수를 떨어뜨리는 등 택배기사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형화물 배송에 대해 일반 화물보다 높은 수수료를 지급해야 했을 것이나, 택배회사나 대리점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적당한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택배연대노조 조합원들은 택배기사들에게 부당한 경제적 손해를 전가하는 이형화물 배송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자신의 비용을 들여 이를 임의로 배송한 후 이에 대한 손해배상조로 택배기사들의 급여에서 일정 금원을 공제한 것입니다.

위 사건의 법리적인 쟁점은 ① 수수료 공제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② 계약상 택배기사들의 집·배송 의무가 언제부터 발생하는지 ③ 택배기사들의 업무를 규정한 계약서 내용이 약관법에 위반한 불공정 조항은 아닌지 등이었습니다. 특히 약관법 위반 여부와 관련해 택배회사 내부에서조차 취급금지 품목으로 지정한 이형화물에 대해서까지도 무조건적으로 배송의무가 발생한다고 해석할 경우 이는 택배기사들의 주된 급부의무를 대리점주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조항으로서 약관법에 비춰 무효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 사건을 소개하며 제가 진짜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은 위와 같은 법리적인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정 밖에서 한 번쯤 인간의 도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던 중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물품을 배송하던 택배기사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많은 대리점주는 택배기사들이 업무상부상으로 결근을 하면 이를 대체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화물 용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이에 들어간 비용을 결근한 기사들에게 손해배상조로 청구합니다. 제가 담당한 사건에서도 조합원들 중 일부가 허리디스크 부상으로 인해 결근한 경우가 있었는데, 대리점주 사장은 다음 달 급여에서 200만원가량의 금원을 공제했습니다. 택배기사들은 아파도 좀처럼 쉴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아파도 일하라는 말입니다. 쓰러져도 일하다 쓰러지라는 말입니다. 심각한 업무상부상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근은 택배기사의 고의·과실이 없는 행위로서 채무불이행을 구성한다고 볼 여지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손해배상 운운하기 전에 인간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참 서글펐습니다. 세상에 함께 일하던 동료가 열심히 일하다 다쳐서 못 나오는데 “다음달 월급에서 깔게”라고 말하는 사장. 너무나도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이 사건과 같이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에서 투쟁이 필요하며, 법리적인 측면에서도 다양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종적으로는 택배기사들을 비롯한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을 명확히 인정할 수 있도록 근기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투쟁이나 법률적인 대응 이전에 함께 일한 사장이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면모를 갖출 수는 없는 것인지, 당신들이 진짜 원하는 직장이라는 공간이 아파서 부상당한 동료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공간인지 의문이 듭니다. 여러모로 착잡한 심정을 안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