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5일 <매일노동뉴스>에서 읽었다.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푼다는 기사였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손경식 한국경총 회장·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에서 4차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열고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 보장 특별위원회(연금개혁특위)’ 발족에 합의”하고서, “연내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목표로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합리적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는 ILO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87호·98호) 비준에 필요한 △노조 설립신고(노조 아님 통보·노조임원 자격 제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과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상 노조 가입범위 △해고자·실업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조 가입 △노조전임자·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등 4가지 우선 법 개정 사항을 놓고 노사정 합의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달 말까지 노사정 합의안이 마련되면 국회에 전달해 입법 과정을 밟겠다는 구상”이라고 했다. 이렇게 오늘 이 나라에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이름을 바꾼 경제사회노동위 차원에서 노사정 간 대화로 주요 노동현안을 해결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조차도 논의할 정도로 바야흐로 사회적 대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2. 사실 사회적 대화를 이야기해 왔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도, 심지어 박근혜와 이명박 정권에서도 노사정위니 노사정대표자회의니 해서 주요 노동현안 해결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말해 왔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했던 노동시장 구조개혁를 위한 9·15 노사정 합의도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서 이뤄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돼 수많은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쫓아내던 때에도,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등으로 임금 삭감을 추진할 때에도,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법을 도입하거나 개악하고자 할 때에도 이 나라에서는 사회적 대화를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였던 김대중 정권에서도, 그 관리체제에서 벗어난 노무현 정권에서도 그랬다. 고용과 임금 등 노동자권리를 저하시키는 노동법 개정을 추진할 때면 언제나 그랬다. 보수든 민주든 그 정권이 무엇이든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를 내세우고 자신이 원하는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그래서 오늘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위에서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에 관해 노사정 간 대화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기사를 읽었다.

3.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촛불대선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나라를 나라답게, 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87쪽).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공약이었다. 구체적으로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1948년, 147개국 비준),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1949년, 156개국 비준),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 1930년, 171개국 비준)과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 1957년, 167개국 비준)”을 비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라 국내법 개정 계획을 밝혔다. 이 ILO 핵심협약은 단결의 자유 등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것이고, 이를 비준하게 되면 이 나라 노동자는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협약을 비준하게 되면 더는 노조법 등 법령이나 노동부 지침 내지 행정해석을 통한 노동기본권 제한은 용납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우리 노동자들은 커다란 기대를 해 왔다. 특히 과거 정권에서와는 달리 관련 국내법 개정을 먼저 한 후에 비준하겠다고 공약하지 않은 것에 나는 주목했다. 노조법 등 국내법 개정이 어렵다는 걸 더는 핑계로 하지 않고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것을 알고 이제 우리 노동자도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가 보다 하고 나는 기대했다. 그렇게 1년6개월이 기대로 지나갔다. 비준 없이 지나갔다. 문재인 정부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어떠한 행동도 없었다. 그저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로 경제사회노동위에서 이에 관해 논의하기로 했다는 것만 있었다. 분명히 문재인 대통령이 노사정 간 합의하게 되면 비준하겠다고 공약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하는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에서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조법 등 법 개정에 합의해 국회 입법을 거친 후 비준하는 것으로 추진되고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하지 않았던 과거 정권과 다름없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4.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노동자가 단결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 행동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헌법이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33조). 국가 대한민국이 우리 노동자를 가엾이 여겨 특별히 보장하는 기본권도 아니다. 그저 노동자도 자신을 위해서 단결해서 활동할 자유를 기본권으로 선언한 것이다. 국가권력이 노동자의 단결 활동을 위해서 사용자를 제압해 주는 기본권도 아니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단결해서 활동하는 노동자 및 단결체가 제압당하지 않을 ‘자유’에 불과하다. 헌법 33조에서 노동기본권으로 규정하지 않았더라도 헌법 21조 결사의 자유로 보장돼야 할 노동자의 ‘자유’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노동자의 자유를 빼앗았다. 노조법 등 법률을 통해서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금지해서 예외적으로 허용해 왔다. 교섭과 파업 등 단체행동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이 주체·목적·절차, 수단과 방법에서 온갖 제한과 금지를 규정해 놓고 있다. 교사·공무원 등 특별한 노동자만이 아니다. 노동자 일반의 자유를 자유 아닌 것으로 법령과 권력의 법집행을 통해 박탈해 왔던 것이니, 이 나라에서 노동기본권을 두고서 노동자의 자유를 말할 수 없게 됐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 행사가 이 지경이기에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기대했던 것이다. 비준을 통해서 노동자가 자유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던 것이다.

5.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해 노사정 간 합의로 정한다는 것을 나는 납득할 수 없다. 대한민국헌법은 이미 노동자의 자유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 이를 두고서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를 할 것은 아니다. 노동기본권은 국가가 노동자의 자유로 보장할 문제지, 사용자 자본과 협상해서 확보해야 할 노동자권리 문제도 아니다. 국가 대한민국이 노조법 등 법령을 통해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금지해서 빼앗았으니, 이를 되돌려 놓아야 할 문제인 것이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사용자에게 어떤 노동자권리를 양보하고서 확보해야 할 권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수십년 동안 이를 두고서 사회적 대화 운운해 왔다. 대한민국헌법이 보장한 노동자 자유, 노동기본권 행사를 두고서 사용자 자본에 노동자가 뭔가 양보해야 할 것인 양 노사정 대화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그리고 이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노동기본권이 노동자의 자유로서 온전히 보장된다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리 선의와 높은 기대를 가지고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도 노동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무엇인가 합의한다면, 그에 따른 국회 입법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문재인 정부는 오늘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경제사회노동위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추진하는 것인지 모른다. 노사정 간 합의한 것이라면 사용자 자본을 대변하는 보수정당도 그 입법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비준은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노사정 간 대화에서 사용자측의 완강한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해 그 입법과 비준 추진이 어렵게 되더라도 문재인 정부는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을 테고,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서 경제사회노동위의 의제로 삼고 입법과 비준을 추진했지만 사용자측과 이를 대변하는 정당의 반대로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권력이 아닌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나아가야 하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노동기본권은 무엇을 양보하고서 확보할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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