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10년 전 미국에서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이 실시됐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유례없는 확장적 통화·재정정책이 실시됐다. 그 결과 세계금융위기는 1929년 대공황과 달리 경제 붕괴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물론 금융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경제는 10년 넘게 저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경제활동참가율 저하, 이민자 문제, 중앙은행의 테이퍼링(양적완화 규모 축소) 어려움, 무역 갈등 확대 등등 현재 경제 상태는 위기 이전과 비교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세계경제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는가? 마르크스는 오늘날 같은 경제 상태를 자본주의적 기술발전의 필연적 결과라고 이야기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려 한다.

자본주의는 자본소유자(자본가)가 투자한 자본 대비 더 많은 이윤(이윤율)을 얻기 위해 생산을 조직하는 경제체계다. 그래서 자본가는 이윤율이 높아질 때 이전보다 더 많이 생산을 조직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성장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는 어떻게 이윤율을 높일까? 첫째, 노동자의 임금을 쥐어짜는 것이다. 더 많이 일을 시키고, 더 적게 임금을 주면 이윤율이 증가한다. 둘째, 기술을 진보시키는 것이다. 더 좋은 기계를 이용해 같은 일을 하고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으면 이윤율이 증가한다. 자본가는 항상 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한다. 하지만 전자보다는 후자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킨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반면 기술진보에는 한계가 없다고 여겨서다. 예로 노동자를 아무리 쥐어짜도 8시간 근무를 24시간으로 3배 늘릴 수 없지만 기계를 발전시키면 8시간 근무에 생산을 3배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노동시간에 더 많이 생산하려면, 즉 같은 생산량에 필요한 노동을 절약하려면 기계 같은 자본을 더 많이 소모해야 한다. 예로 자동차공장에서 시간당 생산을 늘리려면 새로운 로봇이 투입돼야 하고, 매표소에서 필요 노동을 줄이려면 자동판매기를 들여놓아야 한다. 물론 자본가는 자본을 소모하더라도 새로운 기계를 도입해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것을 선호한다. 선도적으로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기술개발에 나서는 것이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로 A기업이 시장에서 100만원에 팔리는 제품을 20만원의 기계를 새로 도입해 80만원에 공급할 수 있게 만든 후 이 제품을 90만원에 시장에 공급하면 시장점유율도 엄청나게 높이면서, 80만원 제품을 90만원에 공급해 10만원의 초과이윤도 얻을 수 있다. A기업은 ‘대박’ 난다. 그런데 이때 문제는 경쟁기업들이 기술을 추격해 같은 기술을 얻게 된 후다. 모두가 20만원 기계를 도입해 제품을 생산하면 시장가격은 90만원이 아니라 80만원으로 낮아진다. 즉 경쟁으로 초과이윤이 사라진다. 이러면 모든 기업이 기계 없이 제품을 100만원에 팔던 시절보다 오히려 이윤율이 낮아진다. 자본은 더 소모했는데, 이윤은 그만큼 늘지 못했으니 말이다. 개별 기업이 노동을 절약하기 위해 자본을 소모하는 시장경쟁을 하다 발생하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기술진보를 편향적이라고 비판했다. 초과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을 절약하고 자본을 소모하는 기술진보가 발전하는데, 이런 기술진보의 편향성이 이윤율을 하락시킨다. 이윤율로 조직되는 경제가 이윤율로 인해 위기를 겪는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다. 기술진보가 이윤율을 하락시키지 않으려면 노동과 자본을 동시에 줄일 수 있어야 한다.(중립적 기술진보라고도 부른다) 예로 컨베이어벨트로 자동차생산에 필요한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줄인 포드주의 혁명은 이윤율을 상승시킨다. 문제는 포드주의 혁명 같은 기술진보가 인류 역사에 특수하고, 드물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기술진보의 일반적·일상적 경향은 노동절약-자본소모의 편향적 진보다.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이윤율 변화를 보자. 이윤율은 190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대폭 상승, 1980년대 중반까지 대폭 하락, 다시 2000년대 중반까지 소폭 상승, 그리고 이후부터 현재까지 소폭 하락 중이다. 첫 번째 대상승기가 2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중립적 기술진보 효과고, 두 번째 소상승기가 3차 산업혁명의 효과다. 한국 자본주의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이후 이윤율이 빠르게 하락하다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으로 이윤율이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이윤율이 다시 하락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고, 2000년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효과로 이윤율이 소폭 상승하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하락 중이다.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는 1980년대 이후의 이윤율 소폭 상승기에 동반한 금융세계화가 원인이었다. 금융세계화는 이윤율이 하락하거나 충분하게 상승하지 못할 때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이 금융주도로 재조직돼 생산을 구조조정하고 노동에 반격을 가하는 현상이다. 영국 자본주의가 이윤율 위기에 처한 19세기 말에도 이런 금융세계화가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투기로 돈을 버는 금융은 투기로 인해 스스로 붕괴한다. 금융의 모순이다. 금융에 의한 구조조정과 노동탄압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4차 산업혁명론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산업혁명의 효과는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최근의 세계적 저성장과 파괴적 갈등은 이윤율 위기가 현실에 관철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이윤율 경제의 모순이 심화되며 붕괴(break-down)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붕괴 현상은 ‘헬조선’이란 청년들의 자조 섞인 말로도 표현된다.

물론 자본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이 우리 공동체의 경제적 불가능성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아닌 경제로 이행해 나가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이윤 경쟁이 아니라 노동하는 시민 스스로가 생산을 조직하고 풍요를 만드는 체제가 돼야 편향적 기술진보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 참고로, 마르크스는 이윤율 경제를 지양하는 이런 체제를 공산주의라고 불렀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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