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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해서? 가족이 자살해서?] 납득하기 어려운 자살 산재 불승인 이유"업무상 스트레스 명확하면 정신병력 없어도 산재 인정해야"

사례 1 :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은 금융노동자가 5개월 만에 실적 압박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통상의 업무를 초과해 자살에 이를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볼 수 없다"며 산업재해를 불승인했다.

사례 2 : 회사의 신설조직인 외식사업부로 발령받아 여러 업무를 겸직하던 한 관리자가 실적 부진과 매장 폐업으로 부하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상사와 갈등을 빚다 자살했다. 질병판정위는 "업무상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나 자살할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볼 수 없다"며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공단에서 '업무상자살' 여부를 다툰 두 사건의 공통점은 질병판정위가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자살할 정도의 스트레스가 아니다'고 판단한 점이다. 이쯤 되면 '자살할 정도의 스트레스는 과연 어느 정도'인지 의심이 들게 된다. 노동계 안팍에서 업무상자살 인정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배경이다.

지난해 자살 산재 10건 중 4건만 인정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공단에서 업무상자살로 인정받은 사례는 2016년 55건에서 지난해 63건으로 소폭 늘었다. 업무상자살 인정률도 2016년 18.2%에서 지난해 36.5%로 18.3%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이 하루 36명, 연간 1만3천92명이나 스스로 이생을 등지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드러나지 않은 업무상자살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올해 5월 펴낸 '2018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6년 자살을 선택한 사람 중 취업자 비중은 45.6%로 절반에 이른다. 그런데도 업무상자살로 인정받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살 산재 인정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높다.

김세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해 공단에서 처리한 업무상자살에 대한 재해조사서와 판정서를 분석해 본 결과 자살에 이를 정도의 스트레스에 대해 기준이 불명확해 질병판정위가 자의적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업무상자살 인정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질병판정위 판정 가운데는 '사망 4년 전 이혼한 사실(정신적 취약상태)' '누나가 3년 전 부부싸움 후 자살(유전적 요인)' 같은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자살을 산재로 보지 않는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

법원보다 더 엄격한 근로복지공단
"자살 산재 인정기준 만들어야"


공단이 법원보다 업무상자살 인정에 더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업무상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에 한해서 자살을 산재로 인정한다. 때문에 공단은 자살의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때 반드시 정신질환 병력을 요구한다. 반면 법원은 정신이상 상태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업무 스트레스가 높았다는 정황이 명확할 경우 자살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추세다.

2012년 8월 대기업 통신업체 상무이사가 회사 합병 이후 상사와 갈등을 겪고 업무 스트레스를 받다 이에 비관해 투신한 사건을 보자. 질병판정위는 "대기업 상무 직책에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 정도로 판단된다"며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위의 근거가 될 정도의 정신과적 상병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며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돼 자살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면, 비록 고인의 내성적 성격 등 개인적 취약성이나 자살 직전 환각·망상·와해된 언행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없더라도 업무상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법원은 노동자 '본인 기준'으로 자살의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반면 공단은 '사회 평균인' 기준으로 범위를 좁혀서 판단한다"며 "질병판정위 내에서 자살을 산재로 인정하면 자살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개인적 취약성을 산재 불승인 근거로 삼지 않는 법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과)는 "현재 업무상자살 인정기준은 이미 자살한 사람에게 스스로 미쳤다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공단이 업무상자살 재해조사시 사망 직전 최소 3개월 간 언행 변화 등을 세부적으로 파악해서 업무적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저하됐는지 여부를 분명히 판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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