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최근 논란이 된 경제 이슈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저성장이 근본원인이란 점이다. 가장 논란이 된 세 가지 이슈를 한번 살펴보자.

첫째, 고용쇼크 논란. 2018년 들어 취업자 증가율이 현격하게 감소하자 정부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논쟁지점이 있지만 어쨌거나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것치고는 실적이 좋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런데 최근의 고용문제는 무엇보다 제조업 취업자 감소와 관계가 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제조업 취업자는 2016년 하반기부터 전년 동월 대비 급감하더니, 2017년 잠깐 반등하다 다시 2018년부터 빠르게 감소 중이다. 제조업 일자리는 노동생산성이 높고, 임금도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국민경제 성장을 견인한다. 제조업 취업자 감소는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 속도를 떨어뜨리고, 소비감소로 내수서비스업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물론 제조업 일자리는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감소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선진국 경험과 비교해도 그 정도가 지나치다.

제조업 일자리 부진은 일시적 경기변동 탓이 아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2011년부터 7년째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1980년대 이래 가장 긴 기간의 하락이다. 제조업 부진의 원인은 일반적으로 추격성장의 한계가 지적된다. 일본 기술을 추격해 성장한 중화학공업이 추격 이후 혁신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추격하며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조선·석유화학·철강 등 제조업 중추 업종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요컨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왔던 제조업의 구조적 위기가 저성장 위기로 표현됐고 일자리 위기의 근본 원인이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저임금 인상 논란은 에피소드에 불과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인 데 반해 제조업 위기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다.

둘째, 서울 아파트가격 폭등. 2018년부터 서울 아파트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정부는 서울 아파트가격 급등의 원인을 투기심리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다.

우선,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택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선진국들의 양적완화로 세계적으로 유휴자금이 엄청나다. 돈은 풀렸는데 실물경제가 살아나지 않다 보니 그 돈이 다시 자산투기로 몰리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우리나라는 세계 자산시장 흐름에 민감하다. 예로 노무현 정부는 규제정책을 매일같이 쏟아 냈지만 세계 부동산 폭등으로 우리나라 부동산가격도 폭등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반대로 갖가지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발표됐지만 세계적 부동산경기 침체로 우리나라 부동산 상승이 역대 최저치였다. 웬만한 대책으로는 한국 부동산시장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도록 만들기 어렵다.

저성장 시기에는 집중이 강해진다. 우리나라는 서울 중심으로 자본을 집적해 성장했다. 이렇다 보니 불황이 닥치면 사람들은 서울로 더 모여든다. 자본집적이 낮은 지방경제가 더 빠르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자산가치를 유지하려고 해도, 서울로 가는 것만이 살 길이다. 그래서 불황기에도 서울 주택가격은 상승한다. 그리고 서울이 오르는 만큼 지방은 하락한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서울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가 바로 이런 불황기 집값 상승의 형태다. 이런 조건에서는 세금을 올려도 효과가 크지 않다. 세금으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과 자본을 막을 수는 없다. 서울에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도 정답이 되기 어렵다. 지방 집값이 더 하락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가격 폭등도 결국 저성장이 만든 효과라는 것이다. 실물경제의 건전한 성장이 없는 한 금융적 혼란과 자산의 집중은 피할 수 없다. 규제는 일시적으로만 효과를 낸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 개혁 논쟁. 국민연금기금 고갈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지면서 연금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거셌다. 연금가입자들의 항의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일까지 있었다.

국민연금 논란은 실은 간단한 것이다. 연금 가입자는 무조건 연금저축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노후소득으로 받는다. 그 소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한 후세대가 현세대 저축액 이상의 노후소득을 책임져야 한다. 연기금을 더 쌓든, 국가지급 방식으로 세금을 늘리든 결과는 같다. 이런 세대 간 소득이전은 인구가 성장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성장률도 떨어지면 문제가 된다. 고성장 시기에 살았던 현세대의 소득을, 저성장 시기를 살아야 할 후세대가, 그것도 더 적은 인구가 더 많은 인구를 책임져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에서는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제도를 개혁하더라도 “소는 누가 키우냐”(소득은 누가 만드냐)는 문제를 우회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전형적인 저성장 시기의 세대 갈등 문제다. 저성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세대 간 불평등한 분배가 논란이 된다. 도덕이나 가치로 풀 문제가 아니다.

고용쇼크, 서울 아파트 폭등, 국민연금 갈등을 관통하는 한 가지는 바로 한국 사회의 저성장 문제다. 저성장은 단순한 성장률 수치 하락이 아니다. 한국 사회 수많은 갈등이 저성장의 효과로 만들어지고, 이전의 사회 갈등들이 또 저성장 탓이 증폭된다. 우리 모두가 오늘날의 한국 경제 상황을 직시하고, 보다 근본적 수준에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곁가지만 치는 정책 대안들로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어렵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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