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후 서울 중소기업중앙회 릴리홀에서 열린 한국노동연구원 개원 3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올해로 개원 30주년을 맞은 한국노동연구원이 주목한 화두는 '격차 해소'다. 노동연구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포용과 활력의 고용시스템을 향해'를 주제로 연 기념세미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격차를 줄이고 취약계층까지 포용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활력 있는 고용·노동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전문가들은 산업·업종 수준에서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연대임금 그리고 취약계층을 끌어안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제시했다.

"심각한 기업 간 임금격차 … 초기업적 임금기준 설정해야 "

한국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간 임금·고용·근로조건이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는 분절 현상이 뚜렷하다.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구조와 대안모색'을 발제한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구조는 기업규모·고용형태·성별 분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기업규모별 분절이 노동시장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는 선진국과도 현저히 비교되는 지점이다. 한국·미국·영국·독일의 가구조사 자료를 활용해 시간당 임금 결정요인을 분석한 결과 영국과 독일에서는 대기업 임금이 영세업체보다 27~30% 높은 데 반해 한국은 46% 높았다. 미국은 그 격차가 8%에 그쳤다.

정 교수는 "기업규모별 노동조건 격차는 사회통합과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해결방안으로 산업·업종 수준에서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을 제안했다. 산별협상을 통해 비슷한 업종끼리 초기업적 임금기준을 설정해 놓으면 회사가 달라도 비슷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이른바 '사회적 노동시장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사회적 노동시장 구축은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줄여 비정규직 정규직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한국 노동시장의 강고한 기업 중심적 성격을 고려하면 초기업 임금기준을 설정하는 건 어려운 과제다. 정 교수는 "직종·직무별, 숙련별 임금을 비교해 임극 격차를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기업별 분절 문제가 덜 심각한 일부 업종의 임금교섭에선 일본의 '개별임금방식'과 유사하게 초기업적 임금기준 활용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개별임금방식이란 노사 간 임금교섭에서 학력·연령·근속연수·숙련도 등 특정 속성을 가진 노동자의 임금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이 기준 이상 끌어올리는 것을 말한다.

"재계는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구축하고
노동계는 직무급제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조성재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연대임금을 위한 노사정 실천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경영계는 자금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구조를 만들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기술혁신과 일터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초기업단위 교섭에 대한 지나친 방어적 태도 대신 사용자 간 조율을 통해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노동계는 산별교섭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경계를 넘어선 직무기반 임금체계를 전향적으로 생각하면서 임금수준을 조정해 나가려는 연대활동을 강화하고, 임금과 복지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사의 노력에 정부는 연대기금 세제혜택,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보장 강화로 화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대화를 주도해 사회통합적 성장전략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라고 조 본부장은 강조했다.

노동시장의 활력은 튼튼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됐을 때 나올 수 있다는 발제가 이어졌다. 사회가 위험관리를 함께해 줘야 '패자부활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야 성장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장지연 노동연구원 부원장은 "실업으로 인한 소득단절에 대해서는 실업보험을 개혁해 모든 취업자를 보호 대상으로 포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실업보험 대상 확대로도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 경력단절 여성, 장기실업자는 보호범위에서 누락되는 만큼 추가적인 실업부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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