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8. 9. 13. 선고 2016가합540378 판결

1. 사건

2016년 5월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위탁용역업체 은성PSD 소속 비정규 노동자 김군의 사망사고가 있었다. 최초에 “비정규 노동자가 업무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취지로 사고 경위를 발표했다가 위탁계약에 따른 외부업체 노동자의 열악한 작업조건이 문제였다는 점이 언론보도로 폭로되자 서울시는 비정규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라며 공식 사과를 하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고, 서울시의 직영화 방침에 따라 2016년 6월30일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는 더 이상 위탁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기간만료로 종료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과거 외주화 방침에 따라 외주업체로 전적했던 전적자들을 이른바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라며 전적자 특혜조항을 없애고 직영 전환 후에도 재고용 심사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이러한 서울시 방침에 따라 직영 전환을 했다. 전적자인 원고들은 서울메트로를 상대로 전적 당시 약속한 신분 및 고용보장 내용에 따라 추가 연장된 정년·고용보장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으나, 서울메트로는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서울메트로를 상대로 직접 고용해 달라고 제소하게 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관계를 읽다 보면 한때 우리 사회 공분의 대상이던 ‘메피아’에 대한 것이라며 노동자 권리보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구의역 김군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직후 서울메트로에서 위탁용역업체 은성PSD로 전적 와 근무하고 있던 전적자들은 ‘메피아’로 불리며 김군을 사망하게 한 원흉인 양 비난을 받았다. 당시 이들이 서울시의 외주화 방침에 따라 서울메트로에서 보다 열악한 외주업체 소속으로 전적해서 근무하는 노동자고, 전적 조건으로 약속된 신분·고용보장을 받아야 할 전적자라는 것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도 사용자 서울메트로에서 고용 등 노동자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용자의 해고 등으로부터 고용보장을 받아야 할 노동자인 것이고, 그럼에도 직영 전환의 방침을 세우고 추진했던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던 것인데, 서울메트로를 상대로 한 직접고용 청구를 통해 그들은 노동자로서 인간선언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2. 쟁점

서울메트로는 2011년 말 원고들이 전적할 당시 위탁용역업체인 전적 회사에 전적하는 조건으로 서울메트로 소속일 때의 정년보다 추가로 2년 내지 3년 연장된 정년을 보장하고, 서울메트로의 정년이 연장되면 그 연장된 기간에 더해 추가로 2년 내지 3년 연장된 정년을 보장해 주기로 했다. 위탁용역업체가 파산하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에는 전적 직원 전원을 고용승계하기로 전적의 조건으로 약정했다며 고용승계를 요구한 데 대해 피고 서울메트로는 전적 당시 약정은 “전적 회사가 파산하거나 서울메트로와 전적 회사의 위탁계약이 해지된 경우”에 고용승계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인데 위탁용역업체 은성PSD와는 기간 만료로 종료된 경우라서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설사 직접고용할 의무가 인정되더라도 서울메트로 인사규정에 정년 60세로 정하고 있어 이를 초과한 고용보장 의무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피고 서울메트로는 고용의무가 인정되더라도 서울메트로 노사가 합의한 임금피크제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 명예퇴직금 반환 등 많은 쟁점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고용의무의 존부에 집중해서 살펴보겠다.

3. 판결

먼저 서울중앙지법 48부(재판장 오상룡)은 전적 당시 피고 서울메트로가 한 “전적 회사가 파산하거나 서울메트로와 전적 회사의 위탁계약이 해지된 경우”에 고용승계하도록 정한 약정의 “객관적인 의미는 원고들의 연장된 정년이 도래하기 전에 위탁용역업체의 파산이나 위탁계약의 해지 등으로 인해 원고들이 더 이상 전적 회사에서 근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서울메트로가 고용을 승계해 원고들의 연장된 정년까지 정년과 보수를 보장하기로 한 약정으로 볼 수 있고, 이는 위탁계약이 해지된 경우가 아니라 기간만료로 종료된 경우라 해서 다르게 해석할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는 약정 문언을 형식적으로 해석해서, 전적 회사가 파산하거나 전적 회사의 위탁계약이 해지된 경우에만 고용승계하고 이 사건에서와 같이 기간만료로 위탁계약이 종료되는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지 않고, 그 약정이 체결된 동기와 경위, 그 약정에 의해 달성하려고 했던 목적과 의사, 고용보장 약정의 내용, 이 사건 위탁계약이 종료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이 사건에서 서울메트로가 직영 전환하면서 기간 만료로 위탁계약이 종료된 경우까지도 약정의 의미를 파악했다. 이러한 판결은 “당사자가 표시한 문언에 의해 그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형식과 내용 그 법률행위가 이뤄진 동기 및 경위, 당자자가 그 법률행위에 의해 달성하려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40858 판결 등 참조)의 법률행위 해석에 관한 법리에 따르면서 전적 조건인 약정의 의미를 전적자인 노동자 고용보호 측면에서 접근해 확장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재판부는 “서울메트로가 고용을 승계하는 경우 서울메트로의 인사규정이 적용돼 원고들의 정년이 단축된다고 보는 것은 이 사건 약정을 통해 달성하려고 했던 원고들과 서울메트로의 진정한 의사에 반하는 것”이라며 “원고들에게는 서울메트로의 인사규정상 정년 60세가 아니라 여기에 추가로 2년 내지 3년이 연장된 정년이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4. 평가

위 판결은 전적의 조건이었던 고용승계에 관한 약정의 의미가 “전적 회사가 파산하거나 서울메트로와 전적 회사의 위탁계약이 해지된 경우”에만 고용승계하도록 한 것인지, 아니면 위탁계약이 기간 만료로 종료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그리고 서울메트로로 고용승계시 서울메트로 인사규정이 적용돼 서울메트로 정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에 관해 전적 당시 약정의 의미를 법률행위의 해석에 관한 법리에 입각해 판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사자 간 체결한 계약 등의 법률행위 의미에 관해 그 당사자들끼리 다투는 경우 당사자가 그 계약 등의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확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사건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원고 노동자들의 고용보호 측면으로 접근해서 약정상 고용승계 대상을 확정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재판부의 접근은 무엇보다 전적의 조건으로 약정이 전적자들의 고용보호를 위한 것이었기에 가능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수많은 사업장에서 외주화가 추진되고, 노동자들은 외주업체로 전적되는 일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이 전적을 수용하더라도 전적노동자 고용 등 권리 보호를 위한 제대로 된 전적 조건을 마련해 둬야 한다는 것을 이번 ‘메피아’ 판결이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 직후 ‘메피아’라며 비난받았던 그들에게 이번 판결은 사용자 서울메트로의 외주화 방침에 따라 전적되고, 다시 직영화 방침에 따라 해고되는 노동자라는 것을 확인해 줬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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