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까지 절차가 남았지만 여야 합의로 환노위 문턱을 넘은 만큼 순조로운 통과가 예상된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지까지 고 박선욱 간호사(사망당시 27세)를 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서울아산병원 5개월차 신입간호사였던 박 간호사는 올해 설연휴 첫날인 2월15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죽음으로 간호업계에 괴롭힘을 뜻하는 은어인 태움(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은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아는 단어가 됐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났다. 병원은 과연 달라졌을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면 직장내 괴롭힘이 사라질까.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병원업종의 직장내 괴롭힘 근절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정미·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정부, 직장내 괴롭힘 근절대책 내놨지만…

우리나라 직장내 괴롭힘 피해율은 업종별로 3.6~27.5% 수준이다. 27개국이 속한 유럽연합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유럽연합은 최소 0.6%(불가리아)에서 최대 9.5%(프랑스)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노동시간 손실비용은 연간 4조7천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 7월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을 내놨다. 개인 간에 풀어야 할 문제 정도로 치부되던 직장내 괴롭힘 개념을 사회적으로 정의해 주목을 받았다. 정부는 직장 내부에 괴롭힘 신고절차 마련을 의무화하고, 직장내 괴롭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업장에 근로감독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 고용노동부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을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직장내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했다"며 "늦었지만 정부가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정부 대책은 사용자가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를 위반했을 때만 형사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이달 현재까지 관련 예산을 배정하지 않은 데다, 대책을 구체화할 수 있는 후속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재현 활동가는 "서울아산병원은 고인이 사망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서울아산병원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직장내 괴롭힘 문제 해결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은 인력확보·교육프로그램, 정부는 세부대책 마련해야"

강경화 한림대 교수(간호학)는 "간호사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경영진의 의지와 인식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식 간호사 노동환경 인증제도인 마그넷 호스피털(magnet hospital)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간호사에게 인증제도는 그야말로 공포이기 때문에 또 다른 인증을 추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했다. 그는 "병원은 적정 수준의 인력을 확보하면서 신규간호사 교육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정부와 관계부처는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세부대책을 마련해 이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사노조 결성을 준비 중인 김재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동남권원자력의학원분회장은 "병원내 괴롭힘은 간호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며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산하 중앙보훈병원에서 지난해부터 의사들이 노조로 뭉치고 있는데 이 역시 인권이 훼손되지 않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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