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에서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유산하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간호사들은 공통적으로 약품을 분쇄하는 일을 했다. 약품에는 생식독성물질이 포함돼 있었다. 서울대병원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두 차례 역학조사 결과 간호사들의 유산과 선천성 장애아 출산은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생식독성물질은 노동자는 물론 자녀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3일 "생식건강 유해인자에서 노동자와 자녀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근로기준법을 개정하라"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생식건강 유해인자에는 생식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은 물론 야간근무나 서서 일하는 환경도 포함된다. 노동부는 44종의 생식독성 유해물질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생식독성’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다. 2016년 인권위가 실태조사한 결과를 보면 생식독성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생식건강 문제를 여성만의 문제로 생각하거나 업무 때문에 난임·불임·유산·사산·선천성 장애아 출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도 낮았다.

인권위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작업장 내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 알권리를 보장하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임산부에게 시킬 수 없는 업무의 폭을 넓히라고 권고했다. 또 독성물질 관련 업무로 인한 선천성 장애아 출산 등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도록 산재보험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업무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귀책사유가 없는 노동자에게 경제적 책임과 정신적 고통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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