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이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에서 일하다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린 노동자에게 역학조사 없이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업무관련성을 인정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업무관련성 전문조사(개별역학조사) 생략 판단기준'을 적용한 첫 사례다.

노동부는 지난 6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종사자들의 산업재해 인정 판례에 따라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인정된 8개 상병(백혈병·다발성경화증·재생불량성빈혈·난소암·뇌종양·악성림프종·유방암·폐암)에 대해서는 역학조사 생략 방침을 밝혔다. 대신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작업기간이나 노출량 등이 인정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산재로 인정하고, 충족하지 않더라도 의학적 인과관계가 있으면 인정하기로 했다.

21일 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에 따르면 공단 천안지사는 이날 오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3년간 일하다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린 김아무개(31)씨가 낸 요양급여 신청을 승인했다.

김씨는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2005년 9월 현장실습생으로 삼성전자(현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해 LCD 사업부 액정공정 씰(seal) 탈포실에서 3년간 생산직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근무 당시 잦은 하혈과 생리불순, 피부질환 등 건강이상으로 2008년 9월 퇴사했다. 2016년 11월부터 몸에 큰 혹이 생기는 등 이상증세가 나타난 김씨는 2017년 4월 비호지킨 림프종 4기 진단을 받았다. 같은해 10월 공단 천안지사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기존 절차대로라면 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김씨가 근무했던 탕정공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의뢰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공단은 과거 동일 작업공정에 대한 역학조사를 한 사례에 따라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심의를 의뢰했다. 서울질판위는 김씨가 3년간 주야교대 근무하면서 지속적으로 화학물질(아세톤·IPA), 이오나이저(정전기 방지용 방사선 장비)에서 나오는 방사선 등 유해요인에 복합노출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서울질판위는 "김씨가 근무했던 곳에서 상병을 일으킬 만한 단일 유해요인 노출량은 적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복합노출로 인한 상승작용이 어떤 영향을 일으킬지 판단할 근거가 없는 현 시점에서 첨단 전자산업에서 근무한 근로자의 혈액암 위험을 보고했던 연구 결과와 보고서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디스플레이가 김씨의 첫 직장이고, 잠복기를 고려했을 때 퇴직 후 요소가 원인이 돼 발병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업무상질병을 인정했다.

사건을 대리한 심준형 공인노무사는 "최근 6년간 삼성직업병에 대한 산재신청 소요기간이 평균 1년11개월 걸렸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역학조사가 생략되면서 9개월 조금 넘게 걸렸다"며 "비교적 신속하게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라고 의미를 짚었다.

심 노무사는 "그동안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직업병 사건에서 복합노출로 인한 유해성 상승작용은 고려하지 않고, 단일 유해요인 노출량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업무관련성이 낮다고 봤다"며 "이번 질판위가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면서 유해요인 복합노출로 인한 상승작용이나 혈액암 위험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적극 고려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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