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압박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영업직 노동자의 죽음을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유진현)에 따르면 고아무개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26일 재판부는 공단 처분을 취소하고 고씨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다.

고씨 남편 최아무개씨는 음료회사 영업사원으로 10년 넘게 일했다. 그와 동료들은 월말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상판매(가판)를 했다. 서류상으로는 판매한 것처럼 매출실적을 회사에 보고하고 대금은 최씨와 동료들이 부담했다. 이들은 판매한 것처럼 보고한 물품을 별도로 보관했다가 도매상에 헐값으로 넘겼다. 도매상들로부터 대금을 떼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씨는 2014년 5월에도 부족한 대금을 자비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에서 보이스피싱을 당해 수백만원을 날렸다. 그는 사건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고 며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유족은 최씨 죽음이 업무상재해라고 주장하며 공단에 산재(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청구했다. 공단은 경제적 압박에 의한 죽음일 뿐 업무와 상관이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최씨 죽음이 업무와 연관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씨는 월말 정산이나 목표치 달성 점검이 다가올수록 정신적 스트레스가 급속히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로 유발·악화된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근로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을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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