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지난 토요일(11일)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열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덥다 못해 뜨거웠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폭염은 이날도 여지없었습니다. 지하철 입구에서 경기장 출입을 안내하던 저는 '이 더위에 축구를 보러 사람들이 올까'라는 걱정을 했습니다. 기우였습니다.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지하철 입구는 북새통이 됐습니다. '지하철을 통째로 전세 내고 왔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손선풍기를 든 시민과 노동자 가족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안내를 마치고 경기장으로 들어가 보니 3만여명의 노동자·시민이 자리를 가득 메웠더군요.

북에서 남으로 온 것은 11년 만이고, 평양에서 열린 지 3년 만에 개최된 행사였습니다.

한국노총과 조선직업총동맹 건설노동자 축구팀의 경기가 시작됐고, 응원은 날씨보다 더 뜨겁게 이어졌습니다. 경기장 한쪽에서는 '우리는 하나'라는 대형 카드섹션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축구를 보던 저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들이 펼쳐졌습니다.

'우리는 하나' 문구를 보면서 '그런데, 남측 노동자들은 하나인가'라는 물음표가 그려진 것입니다.

구호로서 '노동자는 하나'였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말하지만, 사실 생활 속에서 노동의 가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며, 직업에 따라 그 가치는 차이가 납니다. 비슷한 업무를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위험한 일은 비정규 노동자에게 돌아가지만 임금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더 적게 받습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를 할 때 기존 정규직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정규직이 됐는데"라는 일종의 본전 의식이기도 하지요. '정의로운 결과'는 '공정한 차별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느냐는 노동의 가치 척도가 아닙니다. 얼마나 힘든 경쟁을 하고 직장에 들어왔느냐가 기준점이 됩니다. 그러니, 이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지만 양극화 속에서 결코 평등하지 않은 기회는 가난을 대물림하게 만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경기장에서는 태클에 걸려 넘어진 남측 노동자에게 손을 내밀고 일으켜 세우면서 웃는 북측 노동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넘어지고 주춤하는 비정규직에게 손을 내미는 정규직,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청년세대에게 기댈 어깨를 건네는 앞선 세대 노동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제 상상이 너무 비약적인가요? 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 비정규직 연대기금이나, 사무금융노조 KB증권지부의 사회연대기금 조성이 그러한 예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이 넓게 퍼져 나간다면 상상은 현실이 되겠지요.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4·27 판문점선언 이후 첫 번째 민간교류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이 앞장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우리 사회 노동자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이 앞장서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이어져 다음에 또다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열릴 때 ‘하나 된’ 남측의 더 많은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하나 되기’ 위해 남북 노동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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