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주 노동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종사자, 산재인정 처리절차 개선”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노동자의 과중한 입증부담 해소와 산재보호 확대 지원”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보도자료에 의하면 근로복지공단과 법원 판결을 통해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사례와 유사한 공정에서 근무한 종사자가, 백혈병 등 이미 승인된 8개 상병으로 산재신청을 할 경우 역학조사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업무관련성 판단 과정을 간소화해 노동자의 과중한 입증부담을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사실관계를 놓고 보면 노동부는 매우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다.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산재신청을 하고 불승인된 사례가 3~4년이 지나고 나서 법원을 통해 직업병으로 인정된다면, 긴 시간 동안 고통받지 않도록 보다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해서 보험자인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한 사례를 법원에서 취소처분(승인 처분)을 내린 사례가 반복된다면 보험자인 근로복지공단은 해당 사례에 대한 승인 여부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이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반박하는 주요한 논리는 '형평성'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이러한 절차적 신속성 혹은 직업병 승인을 쉽게 하는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상대적으로 대기업이고 작업환경이 비교적 덜 위해한 환경의 노동자들에게 우선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는 조직돼 있지 않아 자신의 문제를 사회에 드러내기 쉽지 않고, 하청업체에 일하는 노동자는 고용불안 문제로 자유롭게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직업병 승인을 확대하는 조치에서도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는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만 그 해석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형평성을 주장하며 모두가 직업병 승인을 받는 것을 어렵게 하자는 게 아니라 모두가 직업병 승인을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형평하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암이 직업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양한 요인이 작용해 특정 원인을 제시하기 어려운 데다, 과거 일하던 시기의 노출을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현재 암의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역학조사는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명확히 관련성을 제시할 만한 사례가 많지 않다. 일부 과학적 근거에 기대어 전문가 합의에 의해 업무 관련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직업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일부 과학의 근거가 활용되는 것일 수는 있지만 직업병으로 승인해 치료비와 소득손실을 보장하고 장해보장을 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영역이다.

노동자에게 발생한 암의 사회적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원인을 분명히 밝혀 예방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직업병 판정이 난 사업장의 책임을 묻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에 책임을 물을수록 직업병 인정기준은 명확히 기업의 책임이 있는 사안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높다. 예방을 위한 조치와 보상 기준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이미 보상에 근거하지 않고도 산업안전보건법·근로기준법 등을 통해 기업의 안전보건의 의무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둘째, 암이 발생한 노동자가 제대로 치료받고 이로 인해 발생한 소득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발생한 암이 직업병으로 승인되지 않더라도 그러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뿐 아니라 소득손실에 따른 상병수당도 필요하다. 당장 건강보험에서 상병수당 확보가 어렵다면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재처리 개선방안이 다른 사업장에 형평성 있게 적용되는 추가적인 조치를 하고, 상병수당 도입 등의 보편적인 사회적 보장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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