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 노사관계> 저자 박천조 북한학 박사. <김학태 기자>

4·27 판문점선언 뒤 남북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북한 노동 관련 전문가나 자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최근 반가운 책이 나왔다. 도서출판 선인이 출간한 <개성공단 노사관계>다. 저자인 박천조(47·사진)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기업지원부장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북한 노동 전문가다. 북한학 박사이면서 공인노무사다. 2007년부터 박근혜 정권이 개성공단을 폐쇄한 2016년 2월까지 재단의 현지 관리기구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일했다. 북한 노동자와 북한 노사관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것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서 박천조 부장을 만났다. 북한의 노동과 노사관계, 남북협력 시대에 준비해야 할 노동에 대해 들었다.

- 개성공단 노사관계와 한국 노사관계를 비교한다면.

“공통점은 노사관계 행위주체가 노사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최대한 노사 자율에 맡기고 정부 개입은 최소화한다. 개성 현지에서도 남쪽 당국은 사측과 노측이 자율적으로 하라는 분위기다. 반면 북쪽은 노동자와 당국과의 연계가 아주 강하다. 체제전환 국가인 베트남이나 중국이 당국과 노조 관계가 강한데, 북한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스스로 단체행동 하는 개성공단 노동자들

- 개성공단 노동자와 사용자도 협상을 하나.

“남쪽에서는 노사가 1년 또는 2년에 한 번씩 단체교섭을 한다. 개성공단에서는 남쪽 단체협상처럼 정례화한 게 아니라 상시협의를 하는 구조다. 임금이나 노동조건은 절반 정도의 기업이 한 달에 한 번이나 분기에 한 번 협의한다. 노동자 배치전환 협의는 분기에 한 번 한다. 품질 협의는 월 네 차례 이상 한다. 남쪽 기업 현지 법인장과 북쪽 종업원대표가 만나 협상한다.”

-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단체행동을 하는지.

“개성공단 가동 초기에 약한 파업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서로의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발생했다. 지금은 태업이나 준법투쟁이 주요한 관철수단으로 활용된다. 북한 당국의 지도를 받을 수는 있지만,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이해와 요구를 관철하려는 면이 강하다. 물론 노동 3권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기 이해와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이다.”

- 북쪽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남쪽 기업 사용자는 어떻게 대응하나.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기 위해 조율한다. 남쪽처럼 노조를 탄압하거나 와해하려는 극단적인 행동은 못한다. 다만 노동자들의 요구수준이 지나치면 북한 당국에 조율을 요청한다. 근로기준법 같은 개성공업지구노동규정은 있지만 집단노사관계법은 없기 때문이다.”

“돈 주니까 말 들어라? 경협에선 안 통해”

-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 공간이다. 노사관계가 특수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용자들은 ‘내가 100만원 주니까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인식한다. 개성공단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노와 사가 동등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등한 가운데 논의해 결정한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돈을 벌러 온 것이 아니라 민족과업에 이바지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성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기는 한다. 그래도 ‘돈을 줬다고 해서 나를 낮게 평가하지 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경제협력 공간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남북은 분단 이후 70년간 서로를 적대한 사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베트남이나 중국에 투자하는 것과는 다르다. 처음에는 날 선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언어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야 경제적인 부분에 관심이 집중된다.”

- 책에서 경제적 관점 노사관계, 정치적 관점 노사관계가 혼재해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개성공단은 노사가 일을 하는 공간이다. 생산과 관련한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데 남북간 정치·군사적 갈등이 고조되면 영향을 받는다. 2008년 이후 남쪽 정부가 바뀌면서 남북갈등이 격화했다. 그러면서 사업장에 정치·군사적 갈등이 생겼다. 평소에는 말을 편하게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서로 경계하게 된다. 비난하는 말투가 나오기도 한다. 남북갈등이 노사관계를 파탄 낸 사례가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다.”

- 우리 기업의 북한 진출이 늘어나 개성 외에 다른 지역에 투자하면 어떨 것 같나.

“개성공단과 비교해 큰 틀에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개성공단 경제협력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 아닌가. 적절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서로 체제를 유지하면서 교류협력이 활발해질 것이다. 당국과 노동자들의 강한 연계, 대등한 노사 지위 같은 북쪽 노동력 관리체계는 유지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북쪽 당국과 노동자들의 연계가 약화할 수 있다. 노사 자율교섭을 하는 쪽으로. 지금처럼 서로 다른 체제가 공존하는 과정이 길어진다면 지금의 방식을 잘 활용해야 한다. 다른 나라가 북한에 투자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쪽은 모든 것에 '우리 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 개성공단 노사관계 표지

“한국 노동계, 북한 노동자 보호해야”

- 남북화해와 남북교류 시대에 노동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노동자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들을 백안시한다거나 선입견 혹은 편견을 가지고 낮춰 보는 인식 말이다. 개성공단 사업장은 대부분 큰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업종이다. 초기에는 한국 주재원들의 기술이 높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전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업무지시를 할 때 북쪽 노동자들을 낮춰 보고 무시하고 깔본다.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노동계는 북쪽 노동자들의 기술수준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이 기술교육을 하지만 그 주체는 노동자다. 노동자끼리 기술을 공유하고 전수할 수 있다. 기업이 설비이전을 고민한다면 노동자들은 기술이전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쪽 노동자들은 (통일되고 난 뒤) 2등 국민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하고 있지 않나. 사회 내부적으로 계층과 계급을 나누면서. 남북 통합을 고민한다면 노동계가 역할을 해야 한다. 북쪽 노동자들이 협력공간에서 배운 기술은 통합이 되고 나서도 인정받아야 한다. 그들이 남쪽에서 채용될 수 있도록 기술 표준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 북한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주의해야 할 것은.

“북이라든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다른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직원을 미국 현지법인에 파견할 때 언어가 되는 사람을 뽑는다. 그 나라 제도와 문화, 주의해야 할 것을 사전에 교육해서 보낸다. 이게 기본인데, 개성공단에 사람을 보낼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올라가라는 식이다. 남쪽에서 인사노무 경험도 없고, 노조활동조차 해 보지 않은 사람을 올려 보낸다. 다른 문화에 대한 준비 없이 생산만을 위해 간다. 이런 사람들이 편견과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북쪽 노동자들과 부딪히면서 갈등하고 경제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 남북 노동문제와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북한은 국가 차원에서 북쪽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 보호가 약해지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산업화 초기 우리의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다. 농촌에 있던 사람들이 도시로 와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중국 농민공처럼. 마른 수건도 짜내는 것이 우리 기업의 방식이다.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노동계가 그런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북한 노동자들이 소외당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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