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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감옥’에도 가을은 오는가
▲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지난 7일 화요일은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였습니다. 그런데도 불덩어리로 변해 가고 있는 지구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질병관리본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여름만 하더라도 온열환자가 전국적으로 3천명이 넘었고, 지난 3개월 동안 일사병 등으로 죽은 사람도 38명이나 된다니 정말 살인 더위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피해자가 대부분 무더위 속에서도 고열작업이나 야외노동에 긴 시간 내몰릴 수밖에 없는 저소득·노약 노동자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생존을 무릅쓸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로, 그 죽음을 그들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우리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 가볍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이 더운 날 그들을 뙤약볕 속으로 내몬 것은 함께 사는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이런 문제를 잘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정부와 대통령의 책임이 더욱 크다 할 것입니다.

그날 오전 10시30분의 햇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 기자회견으로 모인 여러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의 등골로는 땀이 흘러내리고, 얼굴은 벌겋게 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덥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간 전주시청광장 20미터 높이 조명탑 위 펄펄 끓는 철판 위에서는 택시노동자 김재주씨가 338일째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 위에는 파인텍 노동자 박준호·홍기탁씨가 269일째 하늘 감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와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이 22일째 단식을 이어 가고 있었고, 대한문 앞에서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서른 번째 희생자인 김주중씨의 빈소를 차려 놓고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앞장서 저지른 박근혜 시기 재판거래 등을 통한 사법농단의 추악한 모습이 밝혀지면서 그 희생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고, 정부의 정책수행 미숙으로 무책임하게 던진 돌멩이를 맞은 최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이 함께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날이 입추여서인지, 이제는 더위를 끝내고 시원한 가을의 새로운 국면 전환이 절실해서였는지 파인텍 고공농성, 쌍용차 문제 해결과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의 기자회견이 청와대와 대한문 앞에서 차례로 열렸습니다. 어찌 보면 이 세 단위의 요구와 해결은 방법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근본은 하나였습니다. 적폐청산, 2016~2017년 촛불혁명의 첫 번째 요구였던 이명박·박근혜 시대의 적폐를 청산하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스타플렉스에서 파인텍으로 이어지는 승계 약속과 쌍용차 조합원의 복직 합의 이행은 잘못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서 비롯된 것이고, 전교조의 법외노조 철회도 지난 시기의 탈법적이고 부정의한 행정조치를 바로잡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합의가 이뤄졌고 방향이 잡혔는데도 청와대가 좌고우면하면서 주춤거리는 것은 촛불혁명 정신을 구현하는 촛불정권으로서의 책무를 방기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국민을 믿고 자신 있게 운전자론을 펼치는 것처럼 적폐청산이나 민생경제를 위해서도 촛불의 힘을 믿고 당당하게 나서 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따가운 햇살을 등에 업고 지하철역으로 걸었습니다. 하늘 감옥에 갇혀 있거나 단식하는 동지들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너무 편안한 것 같아 힘들었습니다. 경복궁역에 도착하니 거기 안전문 유리에 유안진 시인의 시 <허공>이 쓰여 있었습니다.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어느 한쪽으로 가만히 기운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지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 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우리 모두 서로 당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허공 감옥에 갇혀 있는 김재주·박준호·홍기탁, 단식을 이어 가고 있는 조창익, 김주중의 영정을 안고 몸부림치는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이 살짝이라도 기댈 수 있는 작은 어깨라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온 줄 알고 기다렸는데/ 가을이 왔네요/ 혹시,/ 당신/ 가을인가요?”(<입추>, 윤보영)

‘하늘 감옥’에도 가을이 오고 온 천지가 시원해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이수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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