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서울 섭씨 39.6도, 홍천 41도로 111년 만에 최고기온을 갈아치웠다. 35도 이상이면 발령하는 폭염경보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전 국민이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옥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재난 수준이다. 일하다 목숨을 잃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는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를 내놓았지만 사상 초유의 폭염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물·그늘·휴식시간' 현장점검 강화하겠다
박영만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

박영만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

사상 최악의 폭염이 지속되면서 정부도 인명피해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관급공사에서는 시공업체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등 옥외작업과 관련한 법규와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가이드(물·그늘·휴식)를 준수하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폭염경보·폭염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폭염이 지속될 경우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

다만 민간의 경우 촉박한 공기와 공사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등 비용 문제로 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관리비로 아이스조끼와 아이스팩·제빙기·냉동고 등 보냉장구를 구입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도록 현장지도를 강화할 계획이다.

폭염이 잦아질 때까지 건설현장이나 폭염사업장 등 현장점검을 강화하겠다. 물·그늘·휴식시간 제공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현장에 대해선 작업중지 등 강력 조치해 노동자들의 건강이 보호될 수 있도록 하겠다.

통신노동자를 위한 폭염 대비책 미흡
제유곤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장

제유곤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지부장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가이드하고 있는 폭염에 대한 지침은 옥외노동자 모두의 가이드는 아닌 것 같다. 가이드의 초점은 건설노동자에게 집중돼 있고 그 밖의 옥외작업을 하는 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미흡한 상태다. 하루 종일 땡볕 아래 전신주와 통신주를 오르내리고 아파트 옥상을 돌아다니는 통신노동자들이 그렇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근거해 가이드를 마련하고 점검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이드의 여름철 온열질환 예방 점검표에 나온 휴식·그늘·물·예방교육 같은 항목들은 한 곳에 머물러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면 장소를 계속 이동하며 스케줄을 소화하는 노동자에게는 휴식시간을 회사에서 지정하기 힘들다. 노동자가 스케줄을 조정해 알아서 쉬어야 한다.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에서도 공문을 통해 각 하도급 업체에 업무를 조정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그늘을 제공하라는 가이드도 사실상 효과가 없다. 물 제공은 어떤가. 제대로 된 냉장고가 없는 상태라 만약 회사가 물을 오전에 제공하더라도 마실 수 없는 물이 된다. 열사병 교육은 아직 받아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산업안전보건법 자체가 다양한 업무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지 않다. 허리에 매는 안전띠 하나에 목숨을 걸고 전신주를 올라가고 난간이 없는 옥상을 걸어 다니는 우리 같은 노동자에겐 자칫 고열로 인한 어지럼증 한 번으로 생명에 위협이 가해질 수 있다.

힘들게 단체협약으로 작업중지권을 쟁취했지만 이 또한 발령 주체가 회사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 건강을 판단해 작업을 중지할 수 없다. 실제로 지부는 하도급 업체에 폭염시 안전을 확보하고 작업을 중단하라고 공문을 보냈지만 회사가 주체적으로 업무를 중단시킨 사례는 없다. 정부는 실내외 노동환경의 폭염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게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업무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장점검 없는 알맹이 없는 행정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조선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폭염에 노출돼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하루에 한두 명의 노동자가 폭염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나가는 상황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에 감독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감독을 나갈 시간이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차원에서 노동부 본부에 항의했다.

조선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금속노동자들이 폭염 속 위험에 노출돼 있다. 쇳물이나 용광로가 있는 철강산업 종사자가 그렇다. 유성기업이나 대한이연 같은 자동차 부품사 중 주물 작업을 하는 곳은 현장 온도가 섭씨 50도를 넘어간다.

노동부는 최근 보도자료에서 사업주가 노동자들에게 폭염에 대비해 충분한 물과 그늘,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고시를 통해 습구·흑구온도지수(WBGT)를 감안한 고열 기준을 마련해 사업주들에게 작업현장 열관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부가 현장점검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을 폭염에서 구할 사업장 감독은 안중에도 없다. 고시 역시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가 없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감독을 요구하니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산재사망사고 절반 줄이기 때문에 바쁘니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노동부가 외부에는 떠들썩하게 활동을 홍보하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는 행정을 이어 가고 있다. 고시를 마련했다면 이를 알려주고 지키도록 지도하는 것은 노동부 몫이다. 노동부가 지침과 고시만 내놓고 점검을 하지 않는 것은 노동자가 폭염으로 죽어야만 사업주를 처벌하겠다는 것이 같다. 폭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은 부족한 법이 아니다. 노동부가 사업주와 결탁해 법을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5출1퇴! 시원하게 가즈아!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

문재인 대통령이 밝혔듯 ‘폭염 재난’이다. 폭염에 대비한 안전규칙이란 게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과 고용노동부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건설노동자 열에 셋은 물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열에 일곱은 그늘막도 없이 아무데서나 쉬고, 응급조치 등 관련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다단계 하도급이 그 근본 원인이다. 건설현장은 시간이 금이다. 물량도급이 팽배하다. 하루하루 정해진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구조다. 폭염이라 해도 쉬는 시간 갖기가 어렵다. 노동부가 내놓은 대책을 실현하기 위한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하다. 작업시간을 좀 당겨서 할 수도 있다. 실제 LH의 대구 연경지구 현장은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1시면 일을 마친다. 경기도 의왕 아파트 현장도 새벽 5시 출근하고, 오후 1시 퇴근한다. 더위를 피할 수 있어 건설노동자들이 반기는 폭염 대책 중 하나다. 정부가 나서 임금 공제 없는 휴게시간 보장과 작업시간 변경을 권고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폭염기를 감안해 공사기간이나 공사금액을 책정해 건설노동자가 더울 땐 쉬며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교사나 공무원·경찰이 더위 때문에 죽는 상황이라면 이 사회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것이다. 건설현장은 더워 죽을 것 같으니 작업중지를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실정이다. 손으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의 땀방울이 존중받는 사회가 최고의 폭염 대책일 것이다.

인력 늘려 폭염 노출시간 줄이는 게 최고의 대책
윤혜영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노동안전국장

윤혜영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노동안전국장

철도노동자들에게 요즘 같은 날씨는 재난을 넘어 재앙이다. 섭씨 50~60도를 넘나드는 선로는 열가마가 따로 없다. 폭염은 열차와 선로 그리고 전차선 이상과 고장까지 일으킨다.

여름은 늘 덥다. 기간과 약간의 온도차이만 있을 뿐이다. 폭염대책은 기록적 폭염에 따라 특별히 세워야 할 ‘특별대책’이 아니라 매년 예상되기 때문에 미리 세워야 할 ‘사전대책’이어야 했다. 작업자들에게 필요한 기능성 보호물품을 봄부터 요구했는데 뒤늦게 구매한다고 나서니 업체에 물건이 없어 이제야 지급받는 중이다. 뒷북치는 대책이다.

날씨주의보와 경보발령시 작업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긴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작업 전환과 작업중지를 소속장이 판단해 시행한다는 내용을 올해 단체협약으로 맺어 놓았다. 아쉽게도 소속장의 판단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은 온전히 현장의 몫으로 남아 있는 한계가 있는 내용이다.

건강장해를 일으킬 정도의 날씨(폭염·한냉·미세먼지)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될 때 작업자들에게 가장 좋은 대책은 작업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작업시간은 작업량과 관련되므로 긴급하고 불가피한 작업 이외에는 실내작업 전환과 작업시간대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철도업무 특성상 작업을 미뤄 놓고 탄력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업무가 드물기 때문에 최고의 대책은 안전인력을 확보해서 폭염 노출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대책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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