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로 2대 지침을 폐기한다.”

지난해 9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저성과자 해고 근거를 제공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노동자 동의 없이 사용자 마음대로 성과연봉제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게 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폐기를 선언했다. 노동부는 법률로 정해야 할 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행정지침으로 완화해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2대 지침 폐기 후 법령 취지를 벗어나거나 법률의 위임 범위를 초과해 노동권을 침해한 불합리한 법·제도는 모두 사라졌을까. 여전히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시행령과 지침이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며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노동부에 이같이 법률 취지를 벗어난 행정입법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개혁위 “위임입법 한계 벗어난 시행령 폐지” 권고

고용노동행정개혁위가 1일 9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과 법률의 위임 없이 또는 위임 범위를 초과해 노동권을 침해한 시행령을 폐지·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임 없이 노조 설립과 유지·활동을 제약한 노조법 시행령 9조2항 폐기를 주문했다. 시행령은 ‘설립신고서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해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조 아님을 통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령 7조도 모법의 위임 없이 노동권을 침해한 사례다. 시행령에 따르면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독립된 사업 또는 사업장에 조직된 노동단체는 지부·분회 등 어떤 명칭을 쓰든 설립신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부나 지회·분회는 법인격이 없기 때문에 신고 의무가 없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개혁위는 모법이나 판례에 위배되는 행정지침과 행정해석을 폐지·개정하고 노동권 침해 등으로 개선 의견이 있는 행정지침 재검토를 주문했다. 위법하거나 부당한 노동 관행 근절을 위해 필요한 지침이나 매뉴얼을 마련하라는 권고가 뒤따랐다. 포괄임금제의 원칙적 금지, 일터 인권(직장갑질) 침해 예방과 단속, 노동시간의 정확한 기록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동계는 그간 통상임금 산정지침(2014)과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매뉴얼(2014)·비정규직 종합 대책안(2014) 등을 대법원 판결을 넘어선 행정해석·임금체계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자 임금과 노동조건·고용과 직결된 법익을 침해하고 국회의 입법 영역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근로시간면제 한도 적용 매뉴얼(2010·2013)은 대표적인 노동기본권 침해 사례로 꼽힌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근로시간면제 한도 적용 매뉴얼은 ‘근로시간면제자’라는 개념을 자의적으로 만들고, 법률에 근거 없이 인원 제한을 통해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했다”며 “상급단체 파견·쟁의행위와 관련된 업무를 근로시간면제 대상업무에서 제외하는 등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선 내용을 다수 포함시켜 헌법에서 보장한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장관 “노조 아님 통보 조항 폐지는 아직”

노동계는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를 통해 입법적으로 해결했어야 할 문제가 노동부의 일방적 해석이나 지침 제정 때문에 꼬였다고 비판했다. 개혁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행정지침이나 행정해석 등의 제·개정 절차 혁신을 주문했다. 제정·변경·폐기 기준과 절차를 확립하고 지침 등을 국민이 투명하고 용이하게 알 수 있도록 공개하라는 것이다. 외부전문가와 노사단체 등을 포함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정기적으로, 혹은 지침과 취지가 다른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 지침을 재검토하라고 주문했다.

개혁위는 최저임금위원회나 노동위원회 등 각종 국가 위원회의 참여권·추천권을 일부 노사단체에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법령을 개정해 다양한 노사단체가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김영주 장관은 이날 노조법 시행령 9조(설립신고서의 보완요구 등)2항 삭제 권고에 대해 “현행 조항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한다”면서도 “현재 노사관계 법·제도 전문가위원회에서 설립신고제도와 관련된 제도개선 전반을 논의하고 있으므로 이와 연계해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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