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돕기 위해 노동법원 설치와 참심제 도입을 추진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노동분쟁에 대한 신속한 판결과 전문성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노동법원 설립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청와대와의 거래 목록에 포함시킨 것이다.

“노동법원·참심제, BH 성과업적으로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3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 남용 관련 문건 중 공개하지 않았던 228개 중 중복파일 32개를 제외한 196개 문건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 중 2015년 1월15일 작성된 ‘BH로부터의 상고법원 입법추진동력 확보방안 검토’ 문건을 보면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가 추진한 공공·노동·금융·교육 4대 구조개혁에 주목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았지만 상고법원 입법에 추진력이 붙지 않는 것으로 대법원은 분석했다. 대법원은 문건에서 “4대 부문 구조개혁 중 사법부 관련 아이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BH가 주도해 정권의 성과업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사법제도 개선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상고법원안을 포함시켜 함께 추진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정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로 ‘노동분쟁 해결 프로세스 혁신’을 지목했다. 구체적으로 전문법원으로서 노동법원 설치를 제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3월까지 노동시장 구조개혁 대타협을 도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검찰청은 2014년 대법원에 “2009년 철도파업 관련 업무방해 사건의 신속한 판결”을 요청했다.

대법원은 두 사례를 노동법원 설립과 관련해 청와대를 설득할 수 있는 카드로 봤다.

노동계 숙원사업이 사법거래로 악용

대법원은 같은해 4월5일 작성한 같은 제목의 문건에서 노동법원 설립과 참심제 도입계획을 구체화했다. 대법원은 “노사갈등의 폐해가 심각해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경제도약의 발목을 잡는 주된 원인” “노동분쟁이 격렬한 대립양상으로 흘러 자주적 해결에 이르지 못하고 노사간 All or Nothing 논리로 맞섬” 같은 내용을 근거로 노동법원 설립과 노동분쟁 전문가 참여제(참심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또 “근로형태의 다각화, 외국인 노동자 증가, 고용에 있어서 양성평등,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노동관계에서 분쟁이슈가 더욱 복잡·첨예·다양해질 것”이라며 “현재의 노동위원회나 일반 법원에서의 분쟁해결구조로는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같은해 7월20일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 설득전략’ 문건에도 노동법원 설치와 참심제 도입이 주요 과제로 나와 있다.

노동법원이나 참심제는 노동계와 노동법 전문가들이 요구했던 것이다. 민변 회장을 지낸 김선수 신임 대법관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하지만 노동계 반발로 폐기된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돕고, 이를 통해 상고법원 도입 수단으로 제시한 대목은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2009년 철도파업 판결, 알고 보니 검찰이 독촉

대법원이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노동법원 도입을 제시하면서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의 업무방해죄 여부에 대한 대검찰청 요청을 언급한 부분도 주목된다.

대검찰청은 2014년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07도482) 이후 구체적인 적용과 관련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수사 실무에 혼란이 발생하므로 명확한 기준 제시가 시급하다”며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요청했다.

업무방해죄 성립요건을 대폭 완화한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는데도 검찰은 수사 기준을 세우지 못했고, 대법원 역시 2014년 8월 전원합의체와 다른 결정을 했다. 당시 대법원 판결 역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거래 의혹사건에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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