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방안'에서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 왔다”고 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대표적인 '협력사례'로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사건을 내세웠다. 이 내용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오찬회동을 앞두고 작성된 2015년 8월6일자 '현안 말씀자료'에도 포함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 3월17일 철도노조의 2006년 파업과 관련한 판결(2007도482)에서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의 경우에만 파업을 업무방해죄의 ‘위력’ 행사로 봐 처벌대상으로 하겠다고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했다.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사건은 철도공사가 사전에 예측하고 비상운송계획 등 대비책까지 세웠던 사안이다. 노조는 파업에 들어간다고 통지하고 필수유지업무 대상자 선정협의와 통보까지 했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판례가 변경된 이후임에도 유죄가 선고됐다. 예측하고 대비까지 했지만 예측할 수 없었다는 논리인데, 국어 문법상으로 유죄가 될 수 없는 사안이다. 당시 하급심 판결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모두 무죄를 선고하고 있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한편 2009년 철도파업과 그 전개방식 및 태양이 동일했고 오히려 그 기간이 훨씬 더 길었던 2013년 파업의 경우에는 무죄가 선고됐다. 2009년 파업과 2013년 파업은 철도노조의 사전예고, 필수유지업무 통보, 철도공사의 대체근로와 비상운송계획 등 대비책까지 모두 동일하게 진행됐는데 왜 2009년 파업만 유죄인지 법률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13년 철도파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선고됐다는 점이다(대법원 2017.2.3. 선고 2016도1690 판결).

2009년 파업과 관련한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2014년 8월 당시는 철도노조의 2013년 파업 후속 사법처리가 논의되고 있는 시기였다. 통상적으로 공공부문에서 대규모 파업이 발생하면 정부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해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후 공권력 투입, 체포·구속하는 수순으로 파업을 진압해 왔으나,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단순파업=형사처벌’이라는 등식이 깨지면서 그와 같은 대응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관측도 많았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2월22일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을 투입해 민주노총 건물의 출입문을 부수고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펼쳤다. 공안검찰은 철도노조 집행부를 대거 기소했다. 만일 2014년 8월20일 대법원에서 철도노조의 2009년 파업을 ‘무죄’로 판단했다면, 향후 정권의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인 점에서 이 사건 판결은 이러한 맥락에서도 ‘국정운영에 대한 협조’로 이뤄진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또 당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공공부문 정상화 대책(2013년 12월 발표)’과의 관련성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8월부터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구호로 제시하면서 우리 사회 가장 비정상적 집단으로 공공기관을 꼽고, 그 해결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2014년 상반기 복리후생 삭감과 단체협약 개악 등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노사관계 개입을 집중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공공기관 노조의 반발을 초래했다. 위 대책은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대책’의 후속 정책인 바 ‘공공기관 선진화 대책’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2009년 철도파업의 불법화는 이런 맥락에서 당시 정권에 대한 국정운영 협조로 이해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주심은 2008년 촛불재판 당시 위법한 ‘배당 관여 및 재판 압력 행사’ 행위로 대법원 진상조사와 대법관 윤리위원회 심의·권고까지 받았던 신영철 대법관(2009년 2월~2015년 2월 재직)이었다.

이렇게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사건이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공공기관 파업을 불법화하는 쪽으로 결론을 유도했고, 그 결과를 청와대에 보고함으로써 재판 결과를 상고법원 입법추진과 관련한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 것이 아닌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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