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 노사공동 나눔협의체(UCC·Union Corporate Committee)는 2011년 출범했다. KT와 분당서울대병원·한국농어촌공사·장애인고용공단을 비롯한 20개 기업 노사가 참여하고 있다. 창립 이래 환경·여성·장애우·독거 어르신 지원 사업을 펼쳤다. UCC는 다양한 나눔활동 중 하나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의 안정적인 국내 정착을 돕고 국내기업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40여 가구의 베트남 이주 다문화가정을 선정해 현지에서 △화상상봉 △IT 체험 △무상진료 △한국 전통문화 체험 △현지가족 시내투어 △화합의 밤 음악회 등 활동을 한다. 지난해부터는 고엽제 후유 장애 시설을 찾아 아이들의 치유활동을 돕고 각종 환경개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KT 봉사단에 참여해 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봉사활동을 한 노동자가 소회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박화자 KT 대구고객본부 CS지원부 CS지원팀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인생이라는 자괴가 들 때. 어느새 벌써 고장 날 나이인가 싶어 영양제를 삼키다 문득, 여태 제대로 이뤄 놓은 것 하나 없구나 하는 자책이 들 때. 이렇게 어영부영하다 정말 아쉬움만 남긴 채 한 줌 흙으로 사라지겠구나 하는 헛헛함이 찾아올 때. 살다 보면 간혹 그런 순간이 엄습할 때가 있다.

이 막연한 불안과 공허를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맛집을 순례하는 것도 예쁜 옷과 구두로 물욕을 잠재우는 것도 아주 잠깐의 만족일 뿐, 저 깊은 심연의 빈 곳을 메우지는 못했다. 처음엔 닥치는 대로 책부터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노라고, 어떠한 책도 삶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하던가? 자신이 속한 환경에만 안주해 있는 사람은 근원적인 물음에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없다. 우물 안 개구리는 결코 우물 밖 세계를 알 수 없고, 숲을 벗어나지 않으면 숲의 본질을 깨우칠 수 없다. 그렇게 책을 통해 다른 세계를 알게 되고 내 시각과 사고를 확장했다.

시야가 넓어지고 성찰이 깊어지니 세상 곳곳의 모순과 부조리도 그만큼 잘 보였다. 그 전엔 내전을 피해 작은 난민선에 몸을 싣고 탈출을 감행하던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가 에게해의 별이 되고, 식수를 구하기 위해 맨발로 10시간을 걷는 아프리카 아이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면서도 잠시 가슴 아파했을 뿐, 그저 국제뉴스 아이템의 하나로 금세 잊었다.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이 처절한 비극들은, 그것을 나와 다른 존재로 타자화하는 순간 너무나 단순하게 소비되고 잊힌다.

제일 먼저 아이들을 위한 봉사부터 시작했다. 방치되고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비록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 뛰어다녔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자, 그간 내 안의 스트레스 해소와 힐링을 위해 펼쳤던 이벤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울림과 행복감이 찾아왔다. 일회성이 아닌 생활의 일부분으로 봉사를 실천하면서, 아주 작은 보탬일지라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감회가 스스로의 정신을 살찌우게 했다.

UCC의 글로벌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그러한 실천의 일환이다. 일주일씩 시간을 내어 해외봉사를 다녀온다는 게 가정과 직장이 있는 여성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여정이란 걸 알기에 선뜻 동참했다. 나와 같이 7박8일간의 봉사활동에 참여한 인원은 80명이다. 봉사자들은 다문화가정을 위한 화상 상봉팀, 현지 가족을 위한 투어팀, 의료봉사팀 등으로 나뉘어 각자의 미션을 수행했고, 나는 평소 가장 관심을 뒀던 고엽제 후유 장애아들을 위한 ‘돌봄반’에 배정됐다.

전쟁과 빈곤만큼 인간의 존엄성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것이 있을까? 하노이 외곽에 위치한 보육원에는 베트남전 때 살포된 고엽제 후유 장애를 겪는 2·3세 아이들 120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상태에 따라 전신이 마비된 중증 장애아부터 경증 장애아,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까지 다양한 증상의 아동이 있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부모에게마저 버림받은 아이들. 아이들이 아무 죄도 없이 받아야 했던 불운의 상처를 천분의 일이라도 덜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보육원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퍼즐을 맞추면서 치유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끝나면 봉사단이 준비한 한국음식으로 점심을 배식하고,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낮잠에 빠져들면 이내 활동이 불편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보육원 벽면에 폼블록(압축 스티로폼 보드) 공사를 했다. 같이 그림 치유수업을 하고 함께 놀아 주며 밥을 먹이는 그 대수롭지 않은 일이 뭐라고, 아이들은 즐거움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작별 인사라도 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포옹을 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얼굴을 마주 대는 아이의 몸짓에 종종 콧등이 시큰해졌다. 내 한 몸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와 고아라는 굴레에도 함박웃음을 보여 주던 아이들의 천진함에 매순간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날 선 비난과 약육강식만 있는 정글 같은 세상사라지만, 순환을 통해 질서를 잡는 자연처럼 살아가는 방법은 서로 공생하는 것이다. 세상은 알게 모르게 서로 연관을 맺고, 수많은 타인과 내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굴러간다. 동네·나라·지구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봉사를 통해 건강한 가치관과 행복한 세상을 위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내 자신의 성장을 보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자명한 긍정적 영향을 이번 UCC 봉사로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눔과 봉사에 관심이 있어도 진입 방법을 몰라 망설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일단 한번 시작해 본다면 어려울 것이 없다. ‘더불어 함께 살맛 나는 세상’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질이나 화려한 입담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고요하지만 힘 있게 실천하는 타자에 대한 배려와 책임의식이야말로 진정한 사회변혁의 원동력이다. 내 자신의 정서적 포만을 위해, 이 세상 누구라도 소외된 고통 속을 고단하게 유랑하지 않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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