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연대노조 서울경기지부 기업은행지회
“우리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다를 것 없습니다. 또다시 우리를 서자로 만드는 자회사를 박살내겠습니다. 박살!”

햇볕이 내리쬐는 지난 27일 정오께. 두 명의 남성이 남색 복장에 패랭이를 쓰고 서울 도심 한복판에 섰다. 이들 중 한 명이 노란 바탕에 검은 색과 빨간 색으로 ‘서자(자회사)’라고 적힌 커다란 피켓을 나무 몽둥이로 내리쳐 부수자 길가에 앉은 이들이 손뼉을 쳤다. 기업은행이 자회사를 만들어 용역노동자를 정규직화하려는 시도를 하자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고 반발했다.

전국시설관리노조 서울경기본부와 공공연대노조 서울경기지부가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자회사 전환 반대와 직접고용 전환을 촉구했다. 두 노조 조합원 70여명이 연차를 내거나 근무가 아닌 날을 이용해 집회에 참석했다. 홍길동 복장을 한 두 남성은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각각 “홍길동은 서자(자회사 노동자)이기를 거부한다” “홍길동은 적자(직접고용 노동자)이기를 원한다”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노동자가 자회사 전환 동의했다는 주장은 거짓”

두 노조는 기업은행이 자회사 방식 정규직 전환을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은행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경비·환경미화·조리·사무보조 등 용역노동자 2천여명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문가협의회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가동해 최근까지 18차례 회의를 했다.

배재환 공공연대노조 서울경기지부 기업은행지회장은 “기업은행은 협의회에서 초반부터 자회사 전환 방안을 제시하더니, 최근엔 금융위원회에 환경미화·조리·사무보조·경비 직군의 자회사 전환을 승인받기 위한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며 “기업은행은 4개 직군의 노동자 대표가 동의했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배재환 지회장은 “경비 직군 노동자대표는 2명인데, 이 중 1명인 저는 자회사 전환을 반대한다”며 “자회사 전환에 동의했다는 나머지 직군 노동자대표는 하청업체 관리자급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힘든 이들”이라고 덧붙였다. 배 지회장은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은 애초 협의회가 열리기도 전부터 판이 자회사로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김도진 기업은행장이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발언한 것이 그 증거”라고 지적했다.

“정권 유한하다 생각해 꼼수 부리는 것 아닌가”

발언에 나선 이들은 직접고용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은철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장은 “기업은행은 정부 지분이 투자된 국책금융기관으로, 정부정책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따라야 하는 기관”이라며 “온전한 정규직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회사 방식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치는지는 앞서 자회사를 운영했던 수많은 공공기관에서 볼 수 있다”며 “자회사로 전환되면 중간비용을 계속 지불해야 해 결국 하청업체와 다를 것이 없게 되고, 자회사는 기업은행의 퇴직자 일자리 보전용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본부장은 “기업은행은 지난해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정권은 유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회사 꼼수를 부리는 것 같다”며 “5년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장 위험이 적은 방식들을 택하고 나중을 보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창준 민중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은 집회에 나온 이들을 독려했다. 그는 “홍길동은 서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양반제·봉건제 시대의 모순을 깨닫고 수많은 민중을 만나며 활빈당도 만들고 싸웠다”며 “세상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만들어 가르는 것을 깨달은 여러분이 시대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기업은행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는 여러분들의 땀방울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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