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주말 저녁 9시뉴스였다. 서울 섭씨 38도를 기록했던 무더위가 첫 소식일 거라고 예상하면서 TV를 켰다. “이달 초부터 교섭을 벌여 온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철도노조가 KTX 해고승무원 복직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정리해고된 지 12년여 만입니다.”

예상치 않은 방송뉴스에 놀랐다. 드디어 복직하게 됐다는 것에, 해고승무원의 복직에 노사합의했다는 것에 놀랐고, 무엇보다도 저녁 9시 뉴스에 첫 소식으로 보도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세상이 달라지긴 했다. 촛불대선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권과는 확실히 다르긴 하다며 찜통 더위에도 시원하게 뉴스를 보았다. “드디어 이곳에서 저희가 투쟁이 아닌 농성이 아닌 정말 문제가 해결됐다고 국민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이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이 정말 꿈만 같고 믿기지가 않습니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감격해서 말하고 있었다. 자회사, 사내하청업체 등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투쟁사에서 정말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2. 2004년 코레일(당시 철도청)은 KTX 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여승무원 350명을 채용했는데, 합격한 승무원들은 계약상으로 철도청이 아니라 외주회사 격인 홍익회 소속으로 채용됐다. 승무원들은 코레일의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며 요구했고, 2006년 3월 파업투쟁에 들어갔는데, 사측은 요구를 거부하고 그해 5월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280여명을 해고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코레일 이철 사장 때의 일이었다. 해고된 승무원들은 이후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관계를 주장하며 법적 투쟁을 전개했다. 1심 서울중앙지법 등 하급심법원에서 승소했던 것을 2015년 2월 대법원은 코레일과의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파기환송했다. 이 대법원 판결에 관해서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 사례로 제기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 왔다”며 대통령이 추진 중인 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을 강력히 지원하는 노동관련 판결을 했다고 대외비문건 ‘현안 관련 말씀 자료’(2015.7.)에서 밝히면서, “노동부문의 선진화와 노동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정립을 위해” KTX 승무원 사건에서 “한국철도공사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것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고 기술해 놓았다. 이런 문건이 폭로되자 복직투쟁을 해온 KTX 승무원들은 크게 분노했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것이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권과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거래용으로 이용당해서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고소고발하고 판결 무효와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등 투쟁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코레일의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하기로 노사합의해서, 복직하게 됐다. 지난 12년, 아니 채용되던 때부터 14년간 KTX 승무원들의 꿈은 이렇게 투쟁의 승리로 기록되고 있다.

3. 2015년 2월 KTX 승무원들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던 그날, 나도 그 대법정에 있었다. KTX 승무원 사건이 아닌,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근로자지위소송 사건의 대리인으로 대법정에서 선고를 듣고 있었다. 원고 승소의 원심판결이 확정되는 선고를 들었으니, 나는 원고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기자들의 취재에 감격해 말했었다. 최초로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기 때문이었다. 10년간의 현대차 불법파견 근로자지위소송에 관해 승리로 마침표를 찍었던 날이었는데, 하지만 이날 KTX 승무원 사건의 파기환송 판결 선고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와 KTX 승무원은 어떻게 파견 근로자와 도급계약의 수급업체 근로자로 달랐던 것이기에 그날 대법원은 노동자의 승소와 패소로 달리 판결했던 것인지, 이후 여러 노동법학자들의 판례평석이 있었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규명했다고 볼 수가 없으니 아직도 나는 도대체 KTX 승무원 판결의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불법파견 소송사건마다 사측은 KTX 승무원 사건 대법원판결을 인용하면서 파견이 아닌 도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사건들에서조차 이런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오늘 이 나라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사건 판결이 간접고용 노동자의 불법파견 근로자지위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면, KTX 승무원 판결은 도급계약이라는 사용자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서 빨리 양승태의 대법원이 재판거래로 KTX 승무원 판결을 한 것이라고 수사 결과가 나오고 관련자들이 처벌받기를 바란다. 그때는 그 판결의 이유가 명확해질 것이다.

4. “대승적 차원에서 노사 갈등을 해결하자는 이번 정부 취지에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면서도 “정당한 절차로 해고된 이들까지 이런 식으로 복직시키면 그 부담이 경영진과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말했다고 KTX 승무원의 복직에 관한 노사합의 소식을 보도하면서 한 언론은 마무리하고 있었다. 법적으로만 따지자면 법원에서 패소했으니 KTX 승무원들은 “정당한 절차로 해고된 이들”인 것인데, 이번에 노사합의로 “복직시키면 그 부담이 경영진과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다. 코레일에서 승무원들을 채용하면서 외주업체 소속으로 하도록 국민들에게 묻고서 한 것인가. 코레일이 승무원을 모집해서 채용했으면 코레일 소속으로 사용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코레일이 모집·채용하면서 그 소속을 코레일의 외주업체로 해서 사용하는 걸 너무도 태연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비록 법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할지라도, 그것이 파견법 등 법위반이 아니라도 간접고용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파견이 아니라면, 간접고용은 자유롭다.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자유인 것이고, 그 노동자에겐 감히 자유를 말할 순 없다. 이런 법인 세상이다. 열차 승무원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자리에서 간접고용은 얼마든지 허용되는 것인데, 그 중 사용자를 상대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일수록 사용자가 바라는 대로 간접고용 등으로 고용형태가 결정되는 것이 이 자본의 세상에서 엄연한 노동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자유를 믿고서, 열악한 현실에 기대서 사용자로서 코레일이 간접고용으로 승무원을 사용한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 공기업으로서 코레일이 아니라도, 그저 대기업 사업장이라도 자신의 사업을 위해 노동자를 사용하면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외면하는 계약을 당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법적으로는 그것이 허용될지라도 책임을 회피하는 부끄러운 짓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뻔뻔했다. 이 세상은 공기업 공공기관조차도 간접고용을 태연히 사용할 만큼 노동을 사용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런 세상이니 교수는 KTX 승무원의 복직합의에 그 부담의 국민에 전가 운운하는 말을 하는 것이리라. 다만 이번 노사합의서에 사용자대표로 서명한 코레일 사장 오영식은 그 예외라고 말해 두어야겠다.

5. 파견·간접고용·비정규직 등 노동자의 고용상 권리문제로 보자면, 이번 KTX 승무원의 복직 합의는 작은 시작일 뿐이다. 합의는 KTX의 해고승무원들에 그친다. 물론 그것만이라도 어디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바로 그러하기에 그 소식에 감격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번 합의에도 해고승무원들은 승무원직으로 복직하는 것은 아니다. 승무원직은 자회사인 외주업체 소속으로 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직이 간접고용이 아닌 코레일의 직영고용으로 전환돼야 비로소 KTX 승무원들이 해고를 감수하면서까지 투쟁의 요구가 실현되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비정규직·간접고용이 일반화됐다. 그만큼 공기업 등 공공기관·대기업 등에서 정규직의 일자리는 비정규직·간접고용이 차지했다. 충분히 지급여력이 있는 사업장인데도 비정규직·간접고용의 사용이 행해졌다. 신규의 일자리는 물론, 기존의 일자리까지도 그랬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져서 이제는 정규직 사용이 특별하게 보일 지경이다. 노동에 대한 사용자의 자유가 넘치는 자본존중 사회였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존중 사회는 이런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해야 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존중 사회, 그것은 노동자 사용에 대한 부담을 전가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사용자가 기꺼이 짊어지는 세상일 수 있어야 노동존중의 공약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고용형태에 있어서는 비정규직·간접고용에서 전면적으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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