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가 2019년 최저임금을 8천35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10.9% 인상됐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는 불가능해졌다. 최저임금위는 사용자위원 전체와 노동자위원 중 민주노총 위원이 심의 과정에 불참했다. 결정에 반발해 퇴장하는 일은 있어도 심의에 불참한 사례는 없었다. 최저임금액을 두고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19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관전평을 들었다.

2019년 최저임금, 노동계는 책임 없는가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고도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 대통령은 사과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중장기적으로는 내수시장 확대와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가져 오지만 당장 중소 영세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유럽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이윤율이 매우 낮다. 그래서 원·하청 불공정거래 적폐를 청산하고, 상가임대료 인상을 규제하고, 신용카드 수수료를 인하하는 등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위해 신속하고 강도 높은 경제개혁이 요구됐다.

기대됐던 경제개혁은 없었다. 결국 경제개혁 실패와 경제부처의 무능으로 최저임금 공약이 포기된 것이다. 여당도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무리하게 확대함으로써 양대 노총의 반발과 최저임금위의 파행을 가져온 책임이 크다. 그렇다면 노동계 책임은 없는가?

양대 노총은 정기상여금 수준을 넘어서는 개악의 우려가 있었음에도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국회로 공을 넘긴 원죄가 있다. 또한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위 참여 거부와 복귀 과정에서 공조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게다가 민주노총은 끝내 최저임금위 복귀를 거부했다. 최저임금은 조직 노동자 문제가 아니라 미조직·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문제다. 조합원을 넘어 노동계급의 약자들을 위해 자존심 꺾고 가랑이 밑을 기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노동자 두 계급 시대에 요구되는 조직노동의 진정한 리더십과 용기가 무엇인가? 그것이 이번 최저임금 결정과정이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다.

10.9%도 높은 인상률, 자영업자 후속대책 나와야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어느 나라든 최저임금이 조용히 오르는 경우는 없다. 매우 휘발성 있는 이슈기 때문이다. 다만 박근혜 정부에서도 최저임금은 7~8%가량 올랐다. 평균임금 인상의 두 배 정도 되는 인상률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주도 성장론을 펼치면서 조금 더 가속페달을 밟은 것이다. 사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인 16.4%도 온건한 수준의 인상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안정자금이나 사회보험 지원사업을 확대해 지원했던 것이다.

이번에 최저임금위가 고용·경제상황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해 10.9% 인상을 결정했다고 본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못 지켰으니 '낮은 인상률'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10.9%도 굉장히 빠른 인상률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경제상황에서 감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준이다.

우리나라 저임금 노동자들 비율이 워낙 높기 때문에 최저임금은 평균적인 임금인상률보다는 빠르게 올라가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는 편의점주들이나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스러운 인상률인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빠른 속도로 올리는 게 필요하다는 정책방향에 따라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해 주는 자영업자 후속 대책이 시급히 나와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졌는데, 우리나라 최저임금 결정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회에서 얼마나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야가 결국엔 정치적 타협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최저임금위 시스템도 충분히 바람직한 구조로 기능할 수 있다

10.9% 인상도 무리, 산업정책과 병행해야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

당초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공약은 무리라고 봤다.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을 결정했을 때에는 일단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년 최저임금은 여러 경제·사회변수를 고려해서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라 짐작했다. 내년 10.9% 인상에 대해 2020년 1만원 달성이라는 공약을 깨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역시 무리한 결정이라고 본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의도하지 않게 자영업 구조조정을 촉진한다. 내년에 8천350원을 줄 수 없는 자영업자는 시장에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가 된다. 자영업 구조조정 자체가 나쁜 정책은 아니다. 지금 자영업은 과밀 상태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은 퇴출돼야 한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리면 고용의 양은 떨어지지만 질은 올라간다. 임금을 줄 수 있는 업체만 살아남는다. 반면 감당 못하는 업체는 퇴출된다. 퇴출된 업체에 묶여 있던 청년이나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이 생산성이 높은 업체로 옮겨 가게 된다. 그 이동 과정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경제 전체로 본다면 생산성이 오르고 저임금 노동자층은 고임금 노동자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산업정책이지 최저임금 정책으로 할 문제가 아니다.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고려 없이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에만 집중하다 보니 을들의 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이 고용을 줄이고, 경기를 침체시켰다는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최저임금 정책을 산업의 저임금과 저생산성을 해결하는 종합정책이라는 시각으로 짰어야 했다. 거기에 맞게 정부 재정도 투입돼야 한다.

논의 과정·결정금액·민주노총 최저임금위 불참 아쉽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논의 과정, 결정금액, 민주노총 불참 세 가지 측면에서 아쉽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위해 최저임금위원회는 8천600원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했어야 했다. 이보다 낮은 금액으로 결정한 것은 상반기 고용사정과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이후 정부 일각과 경영계가 반발한 분위기가 반영했기 때문이다. 논의 과정에서 정부·여당과 국회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와 관련해 고정·정기상여금 정도는 포함해야 한다는 공론이 형성돼 있었다. 이 논의가 국회로 갔고, 국회는 여야가 담합해 복리후생수당까지 최저임금에 포함시켜 버렸다. 국회로 넘어가기 전에 최저임금위에서 적극적으로 산입범위 논의를 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민주노총의 최저임금위 불참이 어떤 실익을 냈는지도 평가해 봄직하다. 민주노총이 있었더라면 8천350원보다 조금 더 높은 금액으로 결정됐을 것이다. 내년 논의 과정에서도 참여하지 않을 것인지 묻고 싶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되돌릴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주어진 과제는 산입범위를 통상임금과 맞추는 것이다. 노조가 있는 곳과 없는 곳에서 통상임금 문제로 임금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슈가 부각될 수 있다. 노동계가 면밀히 준비·대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자영업 구조 개편하고 고용 건전화 필요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빠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사용자도 들어오지 않고 결국 한국노총 노동자위원과 공익위원만 결정하게 됐다. 민주노총이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또 그런 입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만 보다 책임있게 최저임금위원회에 임했어야 한다. 사용자위원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액 결정을 떠나 무게감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

내년 최저임금 10.9% 인상은 두 자릿수라는 상징성을 갖기는 했지만 이미 산입범위가 조정된 상황이어서 고용이나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영세사업자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은 영속성은 없지만 당장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장기적으로는 자영업 사업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영세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다. 이런 배경은 고용으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 건전화를 장기적 과제로 삼고 해결해야 한다. 을과 을 간의 싸움을 멈추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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