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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④] 야간 교대근무와 과로사송윤희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고 문송면군 수은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사태 뒤 직업병을 다룰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로 탄생했다. 태생부터 노동자 곁에 있는 의사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라는 모임이 있다.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하는 진단과 치료에 머물지 않고 노동과정과 일터 환경, 일터 건강을 지키겠다며 만든 모임이다. 문송면군 산재사망 30주년을 맞아 지금도 이어지는 노동현장 직업병 문제를 알리겠다며 의사회 회원들이 글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송윤희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조영희(가명)님을 만난 건 지난해 초였다. 한 알루미늄제품 처리업체의 하청업체, 2조2교대라는 죽음의 맞교대를 하는 곳에서 만난 그녀는 작은 키에 꽤나 통통한 체격의 50대 여성노동자였다.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230에 110까지 올라가서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불렀어요.”

“선생님, 저 약 먹어요. 이제.”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혈압을 체크해 보니 다행히 140에 80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1도 고혈압 수준으로 떨어진 사실에 안심하며 그녀를 일터로 돌려보냈다. 향후 투약을 잘하는지 주기적으로 혈압을 체크하면서 상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다시는 조영희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 후 방문 때 담당자는 그녀가 “쓰러졌다”고 했다. 회사에서 일하다 그랬다고 운을 뗐지만 외부로 알리기 싫은 눈치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분의 아들이 원청에 다니고 있고 우리와 몇 차례 상담했던 분인 걸 알게 됐다. 아들과 통화를 부탁했지만 담당자는 재차 거절했다. 원청회사와 보건관리대행 계약을 맺은 ‘을’인 나로서는 더 이상 정보를 추궁하기 힘들었다. 이후 메일로 산재보상 신청을 하게 하라는 요지의 제언서를 보냈다. 내가 선뜻 산재를 제안한 것은 조영희님이 야간에 일을 하는 교대근무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2조2교대 맞교대로 주간 60시간가량 근무하는 만성과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교대근무면 무조건 산재, 그러니까 직업성질환이 되는 거라고?’ ‘왜? 평소에 혈압이 높고 당뇨가 있는 사람이면 개인질환 아닌가?’ 이렇게 의문을 표할 사람들이 꽤 있을 거다. 교대근무(특히 2조2교대)를 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 뇌심질환 위험을 높인다. 누군가는 교대근무를 이렇게 표현했다. “빌어먹는 한이 있어도 안 하고 싶다”고. “정말 죽을 것만 같은 것”이라고. 그렇다. 밤낮을 바꿔 가며 일하는 건 몸에 어마어마한 부담을 준다. 실제로 수많은 실험·연구에서 세포 차원의 산화물질 축적, 혈관내벽의 문제 등 전신적인 대사 이상을 밝혀냈다. 교대근무는 다른 개인적 요인들을 통제하고서도 뇌경색·심근경색·암·당뇨 등의 위험도를 높인다. 그게 야간 교대근무자 특수검진을 하는 이유고, 10여년 전부터 야간 교대근무 위험성을 산업보건전문가들이 언급하기 시작한 이유다.

그렇다고 교대근무를 하는 모든 이들의 뇌심질환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업무 때문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는다. 근로복지공단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심의를 한다. 예전에는 개인 질환이 있으면 쉽게 업무 기인성을 부정했던 것을 이제 반대로 오히려 업무 기인의 양성 요인으로 간주한다. 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밤낮을 바꿔 가면서 일을 하면 약 챙겨 먹기도 운동하기도 힘들고 채소나 현미밥 먹기도 힘들다. 야간근무 끝나면 진한 MSG의 라면국물과 기름기 가득한 과자와 탄산음료가 당긴다. 애써 염분 없고 건강한 음식을 해 먹을 힘도 없고, 집에 돌아가면 밀린 빨래를 하고 곯아떨어지기 바쁘다. 건강이 좋아질 수 없다.

난 공장 닥터다. 작은 공장들을 다니며 아픈 노동자들을 상담하는 게 내 일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교대제와 장시간 노동의 위험을 피부로 느낀다. 지난 2년간 경험한 뇌심질환은 다섯 건이었다. 그런데 한 명도 빠짐없이 야간 교대근무자였다. 그들은 야간근무가 끝나고 잠을 자다가 쓰러지거나 다음날 교대 후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 조영희님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이다. 반신마비 상태고 아들의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인지장애가 남았다. 그녀는 2조2교대 근무자였다.

오랜만에 근황을 알고 싶어 조영희님의 아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요새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 고시가 개정돼 어머니의 산재인정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조심스레 안내를 드렸다. 하지만 도급업체는 조영희님의 산재보험도 가입해 주지 않았고, 이 사안이 발각되면 곤란할 지경이었다. 또한 조영희님과 아들은 회사에서 약간의 치료비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산재보상 신청을 막는 요인은 아들이 원청회사 정규직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 집안의 중요한 생계 책임자일 수 있는 그가, 어머니의 산재 처리를 극도로 꺼려 하는 회사에 용감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노조도 없는 열악한 회사에서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아 보였다. 아들 역시 당뇨 위험이 있는 노동자였다. 걱정이 돼 교대근무 여부를 물었다. 그의 대답에 나는 안도했다. 다행히도 그는 정규직에 주간 근무자였다.

송윤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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