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2019년 최저임금 8천350원. 지난 14일 새벽 마지막까지 협상장을 지킨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과 노동자위원 일부가 각자 안을 내놓고 표결로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거의 매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심의 마지막날 노동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이 인상률에 불만을 갖고 퇴장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번처럼 어느 한쪽이 아예 심의 과정에 불참한 적은 처음이다. '역대급 파행'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위원들 기다린 최저임금위

공익위원 9명과 한국노총(추천 포함) 노동자위원 5명은 13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동안 전원회의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사용자위원들의 복귀를 기다렸다. 사용자위원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3일 오전까지만 해도 사용자위원들의 복귀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관례상 오후 3시30분에 시작했던 전원회의를 오전 10시로 앞당긴 것도 사용자위원들의 참석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이날 회의를 열며 "사용자위원들이 참석 여부를 협의하고 있다"며 "기대와 예상을 결합해 말하자면 오후에는 참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10일 열린 12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사업별 구분적용' 부결에 반발해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사용자위원 9명은 이날 오전부터 서울 모처에 모여 최저임금위 복귀 여부를 검토했다. 오후 3시부터는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논의를 이어 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 때는 같은날 오후 4시를 넘기면서다. 사용자위원들이 경총 건물을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최저임금위 회의장 밖에서는 "심의기한이 연기될 수 있다"거나 "고시일 전까지만 최저임금을 결정하면 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최저임금위는 "사용자위원들에게 불참한다는 얘기를 전달받지 못했다"며 소문을 일축했다.

"밤늦게 일부라도 올 것 같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사용자위원들은 이날 밤 9시50분께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열리는 올해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에 불참한다"는 입장을 최저임금위에 통보했다. 오후 7시30분께 최저임금위가 "밤 10시까지 복귀 여부를 알려 달라"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사용자위원들은 이달 5일 11차 전원회의에서 7천530원(동결)을 최초안으로 제시했다. 사용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사업별 구분적용이 수용되면 수정안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다음 회차 전원회의에서 표결 끝에 부결되자 곧바로 퇴장했다. 수정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사용자위원들은 "공익위원들과 노동자위원들이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편의점주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심한 상황에서 이들의 불만을 잠재울 만한 이른바 '합리적 수준의 인상률'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계는 동결 또는 5% 이내의 소폭 인상을 요구했다. 반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반발하는 노동계는 '동결 또는 한 자릿수 인상률'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최초안으로 1만790원을 요구한 노동자위원들이 막판 협상 과정에서 2차 수정안으로 15.3% 인상률을 제시한 배경이다. 15.3%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저 인상률이다. 노동자위원들은 "산입범위 개악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15.3%는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용자위원들은 동결이나 5% 내외 인상률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최저임금 심의에 불참해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용자위원 불참 통보 후 최저임금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성호 최저임금위 상임위원(공익위원)은 "양측 요구안을 좁히는 과정 자체가 송두리째 없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위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 본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해야 해서 논의가 필요하다"며 "15차 전원회의 전체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최종 의결한 후 결과를 브리핑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위원인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은 (최저임금위에) 들어와서 주장할 순 있지만 (들어오지도 않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건 비겁하다"고 비난했다.

의외의 표결 결과 '8대 6'

노동계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위에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3일 문재인 대통령과 양대 노총 위원장 면담 후 이어진 고용노동부와의 정책협의 결과를 보고 최저임금위를 비롯한 사회적 대화기구 복귀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을 재개정하겠다"는 약속을 정부에 바랐던 반면 노동부는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재개정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차례에 걸친 마라톤 협의에도 노정 정책협의는 무산됐다. 정부의 '최저임금법 재개정 약속'을 담보로 최저임금위부터 복귀하려 했던 민주노총 계획이 틀어졌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지금은 교섭할 때가 아니라 싸워야 할 때"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 14차 전원회의가 열리던 날 입장문으로 최저임금위에 복귀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최저임금위 복귀만 강조할 뿐 개악된 최저임금법 재개정과 주요 노동현안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결단하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담보 없이 최저임금위에 복귀하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밥상을 엎고, 밥그릇을 빼앗는 악법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오늘내일 결정될 최저임금 인상률은 산입범위를 확대한 문재인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14일 새벽 4시30분. 최저임금위는 노동자위원들이 제시한 8천680원과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8천350원을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8대 6. 공익위원안이 채택됐다. 표결을 끝내고 나오는 노동자위원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공익위원 중 1명이 노동자위원안에 찬성한 결과가 나오자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취재진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이 들어왔으면 결과가 뒤집혔겠다"는 말이 나왔다. 이성경 사무총장은 "역부족이었다"는 소회를 밝히고 회의장을 나섰다.

공익위원인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익위원들의 입장은 (인상률이) 한 자릿수부터 두 자릿수 초반까지 걸쳐져 있었다"며 "노사 모두 협상에 진지하게 임했더라면 노동계는 물론 경영계도 다른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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