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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③] 직업병 때문에 떠나는 일터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고 문송면군 수은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사태 뒤 직업병을 다룰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로 탄생했다. 태생부터 노동자 곁에 있는 의사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라는 모임이 있다.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하는 진단과 치료에 머물지 않고 노동과정과 일터 환경, 일터 건강을 지키겠다며 만든 모임이다. 문송면군 산재사망 30주년을 맞아 지금도 이어지는 노동현장 직업병 문제를 알리겠다며 의사회 회원들이 글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어느 날 간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노동자 한 분이 얼마 전부터 작업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 힘들어한다는 내용이었다. 간호사는 작업환경측정 자료를 급히 보내 줬다. 불현듯 최근 비슷한 증상의 노동자들이 기억났다. 그중 한 분은 금속가공유 냄새가 심한 공장에서 일했는데 업무전환 얘기를 하고 얼마 뒤 퇴사했다. 두 번째 분은 플라스틱 접착작업을 했는데 대학병원 예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뒀다. 세 번째 분은 우레탄성형 작업을 13년 하다가 증상이 생겼다. 방독마스크 잘 쓰고 금연하며 계속 일하겠다고 했다. 그분은 몇몇 조치 후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직업성 천식이 틀림없었다. 작업환경측정 자료를 보니 공정에는 기타분진과 무수말레인산이 있었다. 무수말레인산은 천식 유발물질로 알려져 있다. 회사에 곧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다음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 안전보건 담당자는 걱정스럽게 "산업재해와 연관되는 것에 회사 고위관리자가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고 전했다. 회사 방문시 보고서에는 관련 내용을 남기지 말아 달라고도 부탁했다. 그는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결과는 정상이었다고 했다.

회사는 폐쇄적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안전보건 담당자는 우리 팀에 협조적이었다. 담당자 도움으로 전화상으로 노동자 상태를 확인했다. 노동자는 업무 1년 후 별다른 이유 없이 증상이 생겼고 지난해 특수건강진단 때는 증상이 발생하기 이전이었으며 며칠 전 동네 내과를 한 차례 방문해 천식증상 완화용 흡입기만 처방받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근본적 치료를 위해서는 업무전환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더니 노동자는 다행히 동의했다. 그리고 다른 공정 업무가 사용물질만 다를 뿐 비슷한 작업이라서 문제가 없다고 했다. 회사에는 작업환경측정 결과가 정상이더라도 직업성 천식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담당자 역시 무수말레인산 작업을 할 때 자극성 냄새가 있다고 알렸다.

회사에 직업성 천식 확진을 위해서는 큰 병원에서 추가검사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업무관련성이 확실히 인정된다고 전달했다. 회사는 당연히 꺼렸다. 회사의 관심사는 오직 산재로 인정돼 문제가 커지는 것 아닌지 여부였다. 만일 확진검사를 하지 않을 생각이면 노동자가 아직 산재보상 신청을 하지 않았으므로 바로 업무전환을 한 뒤 추가 조치를 해서 같은 증상으로 치료를 받는 일이 없게 하면 된다고 했다. 회사는 이에 동의했다.

이렇게 노동자는 직업성 천식에 걸린 다른 분들과 달리 직업을 유지하며 직업병을 피할 수 있었다. 업무전환이 충분히 가능했고, 회사가 흔히 그렇듯 직업병 문제에는 폐쇄적이었지만 어찌 됐든 예방이 최선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공장을 방문했는데, 분쇄작업을 할 때 주위에 분진과 자극성 냄새가 꽤 있었다. 분쇄된 가루를 투입하는 작업에서도 순간적으로 분진노출이 있었다. 몇몇 노동자들은 작업할 때 목이 따갑고 기침이 난다고 했다. 앞으로 직업성 천식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공정 개선을 권고했다. 회사는 몇 개월 뒤 분쇄작업을 격리하고 국소배기장치와 투입기 주변에 환풍기를 설치했다.

직업성 천식은 성인기 천식의 4~15%라는 보고를 참조하면 우리나라에서 최소 4만여명의 유병인구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진단이 잘 확인되지 않고, 진단 이전단계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얘기도 거의 없다. 업무전환이 불가능한 경우 대부분 참고 일하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다음에야 산재보상 신청 또는 확진검사를 하거나, 노동자 스스로 조기 퇴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업무전환이 가능할지라도 전문가 도움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회사의 산재 거부감까지 더해져 결국 퇴사하는 노동자가 많다. 전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 중 특수건강진단은 연 1회 검진 당시 증상이 없는 경우는 천식 발견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의사·간호사·위생기사가 팀을 이뤄 방문을 하는 보건관리위탁의 경우 의사가 중심이 돼 현장을 모니터링하면 이번 사례와 같이 직업성 천식을 발견하고 관리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건관리위탁에서 직업병 발견을 위한 의사의 역할과 책임은 제도적으로 매우 부실하다. 심지어 의사의 현장순회와 유해요인 파악 의무조차 없는 상황이다.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직업병 투쟁으로 시작된 노동보건 제도들이 30년이나 됐다. 그러나 직업병이 분명한데도 노동자가 스스로 생계를 버리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와 제도 모두 최소한의 필요한 기여조차 못하고 있다. 결국 직업병이 의심될 때 생계와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경우는 행운처럼 가끔 발생한다. 앞으로는 그 행운이 당연함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선웅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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