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주 52시간 근무시행이 오늘로 열흘째를 맞이하여…” “주말 돌려준 주 5일, 저녁 찾아 줄 주 52시간” “주 52시간 시대, 문화계 기대”. 며칠 사이 신문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한국은 그동안 법정노동시간이 주 68시간이었다가 7월1일부터 주 52시간 노동제로 바뀐 줄 알 것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방송 인터뷰에서 "노동시간단축"이라고 말하고, 정부에서도 "주 52시간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등 정부조차도 그런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1998년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 ‘근로시간위원회’가 설립돼 노동시간단축 논의를 시작했고, 2002년 행정기관의 시범시행을 시작으로 해서 2011년 업종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주 40시간 노동을 시행하게 됐다. 이것을 ‘주 5일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주 40시간 노동은 경제위기 시기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고자 하는 정책이었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기도 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기업 경쟁력이 낮아진다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노동시간단축의 사회적 필요성이 커지면서 주 40시간 노동제가 시행될 수 있었다.

그런데 2011년 이후에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노동자가 동의하면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주 52시간을 넘어 68시간, 70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들도 여전히 많았다. 이런 장시간 노동은 위법이지만 노동부는 오히려 위법을 합법화하기 위해 골몰했다. 노동부는 결국 기상천외한 해석을 만들어 냈다. "1주일은 5일이므로, 1주 52시간에 휴일 16시간을 더해서 최장 68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다"는 해석이었다. 이런 노동부의 ‘노력’으로 주 40시간 제도는 무력화됐다. 98년 노사정위가 노동시간단축을 논의할 때, 2011년 주 40시간제를 전 업종에 걸쳐 시행하게 됐을 때, 이것이 주 68시간 노동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겠는가.

기상천외한 노동부 해석으로 인해 기업들은 안심하고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었다. 기업들은 주 68시간 넘는 노동도 시켰다. 연장노동에 대해 노동자 동의가 있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고, 장시간 노동이 위법이라는 사실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노동자 일부도 주 40시간제를 무력화하는 데 일조했다. 임금이 낮은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으로라도 생계를 보전해야 했기 때문에 기업의 편법에 순응했다. 이렇게 긴 시간 일한 결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길게 일하는 국가에 속하게 됐다. 노동자들은 과로로 사망하거나 피로로 건강을 잃고 있다. 시간 여유가 없으니 정치와 사회에 관심 갖고 참여할 기회도 적다. 사회적으로는 일자리를 더 만들지 못했다. 한 사람이 장시간 노동을 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가 없다. 시간당 임금도 최저임금 수준에 가깝게 낮아졌다. 악순환이었다.

올해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1주일은 7일"이라고 명기했다. 2011년에 시행된 주 40시간 노동제가 2019년 7월에 가서야 제자리를 찾는 셈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모두가 지금의 상태를 '주 40시간제'가 아니라 '주 52시간제'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법정 노동시간을 넘는 12시간 연장노동은 노동자가 당연히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가 동의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무조건 52시간 일을 시킬 테니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뜻인가. 노동자 동의를 이처럼 무시할 수 있는가. 또한 주 52시간, 즉 하루 10시간 노동이 어떻게 삶의 질을 보장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구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주 52시간은 여전히 너무나도 긴 노동시간인데 말이다.

정부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노동시간 위반에 대해 처벌을 6개월간 유예하겠다고 한다. 바로 그 '준비' 때문에 2002년에 시범시행된 주 40시간제가 2011년에 와서야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된 것 아니던가. 정부가 무려 7년 동안 편법이 난무하도록 방치하거나 적극 동조해 놓고, 이제 와서 또다시 준비 운운할 수 있는가. 지금 준비가 필요한 것은 기업이 아니다. 주 40시간 이상 노동을 시키면서도 노동자 동의를 구하지 않는 기업,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기업을 제대로 처벌할 정부의 준비가 필요할 뿐이다. 정부가 나서 처벌유예를 이야기하는 지금, 과연 이 정부가 노동시간단축 의지가 있는지 의심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